與 윤석열 손익계산서 보니… 손해만 본 건 아니다?

입력 2021-03-13 04:03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4일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 현관 앞에서 사의를 밝히고 있다. 권현구 기자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야권 대선주자로 우뚝 섰다. 20개월 임기 동안 윤 전 총장은 더불어민주당에게 악몽과도 같은 존재였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일가 수사로 정권을 레임덕 위기로 몰아넣었고, 문재인 대통령의 공약이었던 탈원전 정책도 검찰 수사 대상에 올랐다. 청와대와 민주당은 윤 전 총장 임기 중 상당 기간을 검찰 리스크에 곤혹스러워해야 했다. 그토록 민주당이 바라던 윤 전 총장의 사퇴가 현실화되면서 앓던 이가 빠진 심정을 숨기지 못하는 기류도 민주당 내에 없지 않다.

그렇다고 민주당이 20개월 내내 손해만 봤던 건 아니었다. 조 전 장관에 대한 수사는 친문(친문재인) 지지층의 결집을 불러왔다. 출범을 자신하지 못했던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등 부담스럽던 검찰 개혁 작업도 커다란 반대여론 없이 일사천리로 관철시켰다. 윤 전 총장의 20개월, 민주당의 손익계산서를 들여다봤다.

민주당, 득도 많았다

조 전 장관을 비롯한 윤 총장의 사정수사는 아이러니하게도 여권에 검찰 개혁 명분을 쥐어줬다. 정권 중반, 살아있는 권력에 대한 수사는 지지층의 총 결집을 불러왔다. ‘조국 수호’ 집회가 대표적이다. 범여권 관계자는 12일 “처음에는 당황했으나 시간이 흐르면서 오히려 지지층을 발판삼아 민주당이 검찰 개혁의 명분을 갖게 됐다”며 “야당이 지연 작전에 나섰지만 민주당이 밀어붙이면서 공수처를 설치한 게 한 예”라고 말했다. 이어 “검찰 개혁을 주도한 사람에 대한 먼지털이식 수사는 친문 진영 외에 전통적 민주당 지지층의 위기감도 불러왔다”며 “조 전 장관을 희생양 삼아 민주당이 국정 주도권을 틀어쥐는 역할을 했다”고 말했다.

윤 전 총장이 대선 주자로 떠오르면서 야권의 거물급 정치인이 황폐화된 점도 분명한 민주당으로선 분명한 소득이다. 윤 전 총장이 집권당 대항마로 떠오르자 홍준표 의원(무소속), 오세훈 전 서울시장,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 유승민 전 의원 등 보수 대선주자가 모두 한자릿수 지지율로 상당기간 횡보했다. 대선이 1년 남은 상황에서 재기한 거물 야당 정치인보다는 윤 전 총장을 상대하기가 훨씬 편하다.

민주당 관계자는 “윤 전 총장이 컨벤션 효과로 일시적인 지지율 상승을 보이고 있지만 컨텐츠가 없다는 건 분명하다”며 “정책, 조직, 정치적 비전 등 무엇 하나 기성 정치인보다 나은 면이 없다. 곧 한계가 드러날 것”이라고 말했다.

윤 전 총장은 문재인 대통령의 말대로 ‘문재인정부의 검찰총장’이었다. 그 말은 정부가 윤 전 총장에 대한 검증 작업을 이미 끝냈다는 것을 의미한다. 법조계 관계자는 “이미 정부는 윤 전 총장의 재산이나 가정사 등 그의 인생 경로를 세세히 알고 있다”며 “여기에 검찰이 가지고 있는 윤 전 총장 가족 수사 정보도 적극 활용하려 들 것”이라고 내다봤다.

앞으로가 문제다

윤 전 총장 재임 기간 어려웠던 것도 사실이지만 민주당으로선 앞으로가 더 문제라는 지적도 많다. 먼저 조 전 장관 재판이 가장 큰 관건이다. 청와대와 여권은 그동안 조 전 장관 기소를 검찰 개혁 주도자에 대한 검찰의 보복으로 규정했다. 그러나 조 전 장관 부인인 정경심 동양대 교수가 지난해 12월 입시비리 및 사모펀드 관련 혐의로 징역 4년, 벌금 5억원을 선고받고 법정구속되면서 기류가 변했다.

자녀 입시비리 의혹 등 11개 혐의로 기소된 조 전 장관에게 유죄가 선고된다면 국민 정서가 급반전될 가능성이 높다. 민주당 관계자는 “조 전 장관이 유죄를 선고받는다면 결국 ‘윤석열이 옳았다’는 여론이 형성될 수 있다”며 “이 사건으로 온 국민의 둘로 쪼개져 싸웠다. 검찰 개혁 명분이 희석되고 정권의 국정 운영 방식에 대한 회의감이 확대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검찰개혁 시즌2를 추진하면서 검찰에 대한 사적 보복, 입법 독주 프레임이 공고해지는 것도 악재다. 21대 국회 18개 상임위원장을 독식한 상태에선 협치 실패의 책임을 민주당이 모조리 질 수밖에 없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비극 이후 민주당 정권마다 검찰 트라우마가 재현되고 있다는 점도 부담스럽다. 범여권 관계자는 “앞으로 민주당 정부에서 어떤 검찰 관련 정책을 펼치든 의심의 눈초리를 사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법조계 관계자는 “누구도 말하지 않고 있지만, 결국 노 전 대통령 서거에 대한 복수심이 검찰 개혁 배경에 있다는 것을 누구나 알고 있다”고 말했다.

4·7 재보선이 끝나면 윤 전 총장도, 민주당도 진검 승부에 나설 전망이다. 민주당은 윤 전 총장에 대한 견제 준비에 착수했다. 민주당 핵심 관계자는 “윤 전 총장은 서울대 법대 출신 검찰총장으로서 엘리트의식이 뿌리깊이 박혀있는 인물”이라며 “서민들과 어깨 걸고 살아온 여권 후보들의 정치 감각을 따라잡긴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처럼 곧바로 사라지진 않을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윤태곤 더모아 정치분석실장은 “민주당이 윤 전 총장 덕을 본 것도 사실이지만 그건 결국 결과론”이라며 “반 전 사무총장은 흐름만 올라탔던 거라면 윤 전 총장은 흐름에 더해 축적해둔 정치적 자산도 있어 보인다. 중도포기 없이 끝까지 가려할 것”이라고 말했다.

강준구 기자 eye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