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사회 인종차별 ‘수면 위로’ 해리·마클부부 폭로… 파문 확산

입력 2021-03-10 04:06
영국 해리 왕자의 부인 메건 마클 왕자비가 9일(현지시간) 아침 호주 멜버른에 배포된 신문들의 1면을 차지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영국 해리 왕자의 부인 메건 마클 왕자비가 왕실에서 인종차별을 겪으며 자살 충동까지 느꼈다고 폭로하면서 영국 사회의 인종차별 문제가 수면 위로 떠올랐다. 영국 버밍엄시립대의 마커스 라이더 교수는 미국 뉴욕타임스(NYT)에 “현대에 최초로 흑인 여성이 영국의 왕실에 들어가 최상층부에서 인종차별 의혹을 제기한 것”이라고 이번 인터뷰의 의미를 평가했다. 영국 왕실을 대상으로 인종차별에 대한 조사를 실시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영국과 미국의 주요 언론들이 8일(현지시간) 전날 방송된 마클의 인터뷰를 비중 있게 보도한 가운데 가디언은 “마클이 던진 ‘수류탄’은 영국 왕실을 흔들었고, 제기된 의혹에 대한 해명을 요구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해리 왕자 부부는 전날 미 CBS방송에서 방영된 오프라 윈프리와의 독점 인터뷰에서 “왕실이 ‘피부색’을 우려해 아들 아치를 왕족으로 받아들이기를 원치 않았다”면서 “왕가에서의 곤경 때문에 자살 충동을 갖기도 했다”고 말했다.

시청률 조사기관 닐슨에 따르면 이날 해리 왕자 부부 인터뷰를 시청한 사람은 미국에서만 1710만명으로, 올해 프라임타임 오락특집물 가운데 가장 많은 숫자다.

영국 왕실은 마클의 인종차별 주장에 대해 공식 반응을 내놓지 않은 상태다.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도 이날 브리핑에서 마클의 인터뷰 관련 질문을 받았지만 “여왕과 국가와 영연방을 통합하는 여왕의 역할을 최고로 존경해 왔다”며 즉답을 피했다.

그러나 야당인 노동당은 왕실에 대한 조사를 촉구하고 나섰다. 노동당 키어 스타머 대표는 “마클이 제기한 인종차별과 정신건강 문제는 매우 심각히 다뤄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외신들은 영국에서는 그동안 미국과 달리 인종차별이 사회적 이슈로 제기되지 않았다는 점에 주목하면서 이번 인터뷰가 “영국 사회 전반에 뿌리내린 아슬아슬한 인종차별의 긴장을 드러냈다”(NYT)고 평가했다.

영국 여론조사기업 클리어뷰리서치의 케니 이마피든 국장은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미국에서는 (인종문제에 관한) 역사가 있고, 사회적 논의의 전통이 영국보다 길다”면서 “영국에서 인종차별 문제가 겉으로 크게 부각되지 않은 것이 사람들로 하여금 그런 문제가 없는 것처럼 믿게 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WSJ에 따르면 지난해 영국의 한 여론조사에서 응답자의 89%가 영국이 인종차별적이라고 느끼지 않는다고 답했다. 그러나 이 조사에서 영국 흑인들의 75%는 백인과 비교해 자신들의 권리가 동등하게 보호받지 못한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임세정 기자 fish813@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