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익 950도, 인턴 1년도 무용지물… 식은땀나는 취준생들

입력 2021-03-10 00:03

코로나19가 장기화하면서 취업을 준비하는 2030 청년들의 시름이 커지고 있다. 기업들이 채용 규모를 줄여 취업문이 ‘바늘구멍’이 됐기 때문이다. 청년들은 “코로나19를 전후로 취업시장 판도가 뒤바뀌었다”며 답답함을 호소했다. 극심한 취업난에 아예 구직활동을 그만두고 쉬는 이들도 적지 않다.

지난해 7월 공공기관에서 1년간 계약직 근무를 마친 이모(31)씨는 지난달까지 기업 15곳에 이력서를 넣었지만 전부 불합격했다. 이씨는 계약직을 시작하기 전인 2019년 상반기만 해도 4곳의 기업에 합격했지만 공공기관에서 전공을 살린 직무를 경험하고 싶어 계약직을 택했다가 오히려 경력이 단절된 상황을 맞게 됐다. 이씨는 9일 국민일보와의 통화에서 “이전보다 눈을 낮춰 지원했지만 불합격 통보만 받았다”며 “코로나19가 없었던 시기와 비교할 때 취업시장에서 평가받는 내 가치가 너무나도 달라졌음을 체감한다”고 토로했다.

이씨는 밀려오는 월세, 생활비에 점차 마음이 조급해져 물류·배달 아르바이트를 한다고 했다. 그는 “같이 취업을 준비하는 친구는 배달로 하루 4~5시간씩 일하며 돈을 버는데, 상반기까지 취업을 못 하면 나도 그렇게 해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수도권의 한 박물관에서 인턴을 마치고 지난해 하반기부터 구직 활동을 시작한 박모(28·여)씨의 상황도 마찬가지다. 박씨는 “그동안 지원해본 기관 중 경쟁률이 가장 높았던 곳은 300대 1이었다”며 “좁아진 취업 문턱을 넘기가 쉽지 않다”고 하소연했다. 그는 “1년 동안 했던 인턴이 취업 경쟁력이라 생각했지만 오히려 독이 된 것 같다”며 “‘불합격’ 글자를 볼 때마다 괴롭다”고 했다.

구직활동을 아예 포기하고 무작정 쉬고 있다는 이들도 있었다. 지난해 대학 졸업을 유예하고 무역업계 취업을 준비했던 이모(26·여)씨는 당분간 쉬기로 했다. 이씨는 “토익 950점의 성적과 무역 영어 등 각종 관련 자격증을 취득했지만 목표로 했던 회사들이 대거 채용을 중단했다”고 말했다. 그는 “혹여 취업문이 열릴 수 있다는 기대감으로 꾸준히 진행해왔던 취업 스터디도 지난해 하반기 코로나19가 재유행하면서 기약 없이 중단됐다”고 덧붙였다.

이씨는 “일자리 상황이 나아질 전망도 보이지 않는다는 게 불안하다”며 “코로나19가 올해에도 계속 이어질 거라 예상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취업문은 계속 좁아질까봐 두렵다”고 전했다.

국가통계포털에 따르면 지난 1월 이씨처럼 일이나 구직활동을 하지 않고 그냥 쉰 20·30대 청년이 74만명을 넘어 역대 최다치를 기록했다. 1년 전보다 17만6000명 증가한 수치다. 특히 30대 ‘쉬었음’ 인구는 지난해 21만명에서 올해 28만1000명으로 7만1000명이 증가하며 가장 큰 폭으로 늘었다. 20대 ‘쉬었음’ 인구도 35만5000명에서 46만명으로 10만5000명 늘었다.

정우진 기자 uzi@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