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부터 영세 사업자·자영업자를 위한 부가가치세 간이과세제도가 20년 만에 확대 시행됐다. 물가상승률조차 반영하지 못한다는 비판을 20년 동안 감수하면서까지 요지부동이던 제도가 개편된 데는 갑자기 닥쳐온 코로나19 특수상황이 결정적으로 작용했다. 코로나19로 직격탄을 맞은 영세 사업자·자영업자의 세 부담을 조금이라도 덜어주자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게 된 것이다.
하지만 이 같은 선의가 되레 조세정책의 일관성 및 자영업자 지원에 역효과를 일으킬 수 있다는 지적이 일찌감치 나오고 있다. 재정악화 추세로 증세 논의까지 나오는 와중에 ‘넓은 세원, 낮은 세율’이라는 과세의 보편성에 위배될 수 있다는 것이다. 또 4차 재난지원금 이후 추진할 ‘자영업자 손실보상제’에도 걸림돌이 될 가능성이 없지 않다. 면세 자영업자가 늘면서 손실보상 책정이 어려워질 것이라는 우려에서다.
코로나가 쏘아올린 간이과세제 개편
부가세 간이과세제도는 제조업이나 광업, 도매업, 부동산 매매업 등 특정 업종을 제외한 대부분 업종에서 1년간 총 매출액이 일정 금액 이하인 경우 부가세 납부 의무를 면제해주거나 일반과세자보다 경감해주는 제도를 말한다. 간이과세자는 세금계산서 발급의무가 면제된다. 또 일반과세자에 비해 세액계산이 간편하고 신고횟수도 연 1회로 한 차례 더 적다.
간이과세제도의 적용 기준(과세표준 4800만원 미만)은 2000년부터 20년간 동일하게 유지돼 왔다. 그러다 지난해 세제개편안에서 20년 만에 이 범위가 8000만원으로 확대됐다. 면세 기준도 3000만원에서 4800만원으로 함께 상향 조정됐다. 당시 개편으로 간이과세제도와 납부면제자 인원은 각각 23만명, 34만명 늘어난 것으로 추산된다.
그동안 간이과세 납부면제 기준이 20년 동안 한 번도 조정되지 않은 것과 관련해 물가상승률조차 반영돼 있지 않다는 비판이 끊이지 않았었다. 정부가 너무 경직되게 운용했다는 것이다. 국회에서는 여야 가릴 것 없이 적용 기준을 상향 조정하는 법안이 다수 발의됐지만 기획재정부는 세수 문제 등을 이유로 눈 하나 꿈쩍하지 않았었다.
요지부동이던 이 제도는 유례없는 코로나19 상황으로 변화를 맞이했다. 영세 법인·자영업자의 세 부담을 덜어준다는 명분이 크게 작용한 것. 소상공인연합회(소공연)는 지난해 간이과세제도 개정과 관련해 “소상공인들의 염원에 정치권이 귀 기울인 결과”라며 “이번 개정안은 실질적으로 ‘소상공인 납세 경감법’으로 부를 수 있을 것”이라고 환영했다.
‘소득 파악’ 어렵게 만드나
하지만 간이과세제도는 무자료 거래 관행을 조장해 거래 투명성을 저해하고, 나아가 부가세·소득세 탈루 문제까지 발생시킨다는 문제가 꾸준히 지적돼 왔다. 간이과세 혜택을 받기 위해 매출을 의도적으로 축소하는 ‘위장 간이과세자’에 대한 우려도 있다. 특히 잇단 재난지원금 지급에 따른 추가경정예산 편성으로 최근 재정건전화를 위해 증세 필요성이 부각되면서 간이과세제도 개정안의 문제점이 재차 도드라지고 있는 분위기다. 과세표준 양성화, 공평 과세를 위해서는 간이과세제도가 축소·폐지돼야 한다는 주장이 여전히 힘을 받는 이유다.
이 같은 비판을 의식한 듯 기재부는 후속 시행령을 통해 부작용을 최소화하기 위한 방안을 골몰해 왔다. 먼저 간이과세자 부가가치세 산출 시 적용하는 부가가치율을 현행 5~30%에서 15~40%로 올렸고, 전기·가스·수도업 등 기업 간 거래(B2B) 업종을 간이과세 대상에서 제외하겠다고 밝혔다. 간이과세자에 부과되지 않았던 세금계산서 발급의무도 신설됐다. 기재부 관계자는 “대상을 확대하는 동시에 제도를 합리화하고 세원 투명성을 강화하는 차원”이라고 설명했다.
코로나19 피해를 입은 자영업자를 돕는 차원에서 추진되고 있는 ‘자영업자 손실보상제’가 역설적으로 간이과세제도의 허점을 보여주고 있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간이과세제도 범위에 새롭게 들어와 면세 혜택을 많이 받는 영세 자영업자가 늘어난 만큼 이들의 손실 파악을 어렵게 할 수 있지 않겠느냐는 문제의식이 출발점이다. 영세 자영업자를 위해 도입된 제도가 아이러니하게도 이들을 지원하는 데 걸림돌로 작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 간이과세제도는 정확한 매출 파악이 어렵다는 한계를 안고 있다. 일반 법인 사업자는 부가가치세 신고를 매년 분기마다, 개인 일반과세자는 1년에 두 번 하는데 간이과세제도 대상자는 1년에 1번만 신고한다. 이마저도 업종별 부가가치율에 따라 계산되기 때문에 정확한 매출이라고 단정지어 말할 순 없다.
이 때문에 지난 4차 재난지원금 논의 초기 당시 여당을 중심으로 면세 대상자인 연매출 4800만원 이하 영세 사업자는 그냥 전부 ‘정액 지원’을 하자는 이야기가 나오기도 했다. 이들에 대한 피해 정도를 산출하기 어렵기 때문에 빠른 지급을 위해서는 어쩔 수 없다는 판단이 깔려 있었던 것이다. 한 전문가는 ”간이과세제도 자체가 자영업자가 어느 정도 돈을 벌었는지 혹은 덜 벌었는지 파악하기 어려운 사각지대를 만드는 건 맞는다”고 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경제학과 교수는 “장기적으로 간이과세제도를 축소해 나가는 것이 바람직하다”며 “영세 법인·자영업자에 대한 지원이 ‘제도’로 정착되려면 먼저 과세 기반을 단단히 다지는 게 우선이라고 본다”고 말했다. 일부에서는 간이과세 적용 기준의 확대는 어쩔 수 없다 해도 면세 기준을 늘린 것은 문제라고 보고 있다.
세종=신재희 기자 jsh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