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에도 몇 번씩 미얀마 현지 매체들을 들락거리게 된다. 미얀마에서는 지난달 1일 발생한 군부 쿠데타에 맞선 국민의 불복종운동이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용감하게 전개되고 있다. 벌써 한 달이 넘었다. 집계된 수치로만 54명이 사망했고 이들 중 상당수는 10대, 20대 젊은이들이다. 어제 가족이나 친구, 지인의 장례를 치르고 날이 밝으면 다시 군경이 총을 겨누고 있는 거리로 나가는 마음이란 도대체 어떤 것일까. 50년 넘게 군부 통치하에 살아온 국민에게 기껏해야 5년 남짓 경험한 민주주의가 뭐길래 목숨을 던지는 것일까. 국제사회는 뭐고 아시아는 뭐고 유엔은 또 뭐길래 이 명백한 학살을 멈추지 못하게 하는 것일까. 미얀마 뉴스를 볼 때마다 신음을 흘리게 된다.
미얀마 시위대는 국제사회의 개입과 지원을 간절히 요청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6일 페이스북에 올린 미얀마 유혈 진압 비판 글에는 7800개 넘는 댓글이 달렸다. 대다수 댓글은 미얀마어로 작성됐다. 지지와 관심에 고마움을 전하는 내용들이었다. 아시아 국가 지도자 중 미얀마 반군부 시위에 대한 지지 입장을 공식적으로 표명한 것은 문 대통령이 처음이다. 아시아를 대표하는 민주주의 국가로서, 민주화운동의 역사를 자랑해온 국가로서 최소한 해야 할 일이었다고 생각한다.
한국인들은 미얀마를 보면서 ‘1980년 5월의 광주’를 떠올리기도 한다. 한국과 닮은 미얀마를 보면서 민주주의를 향한 그들의 간절함에 공감하고 응원하게 된다. 그러나 미국도 유엔도 아세안(ASEAN)도 미얀마 군부의 총질을 막지 못하는 가운데 희생자 숫자는 늘어만 간다. 여기서 아시아 민주주의를 위한 한국과 일본의 역할에 대해 생각해보게 된다. 한국과 일본은 아시아에서 영향력 있는 국가다. 아시아에서 제대로 된 민주주의를 하는 나라도 한국과 일본 정도에 불과하다. 이런 두 나라가 아시아 민주화를 위해 뜻을 모으고 미얀마 민주화 세력의 손을 잡아줘야 하지 않을까.
미얀마와 비슷하게 태국에서도 쿠데타로 집권한 군부 정권의 퇴진을 촉구하는 시위가 2년째 이어지고 있다. 지난해엔 홍콩의 민주화 운동이 거셌다. 아시아에서 민주주의 운동은 밀레니얼 세대를 주축으로 어느 때보다 폭발적으로 일어나고 있다. 필리핀이나 캄보디아, 인도네시아, 인도, 심지어 중국에서도 민주주의의 열망은 꿈틀거리고 있다.
그런 점에서 미얀마의 시위가 어떻게 결론이 나는가는 아시아의 민주화 여정에서도 중대한 의미를 가진다. 미얀마의 민주화 운동이 성공한다면 아시아 군부 독재 세력에 큰 타격이 될 것이다. 당장 태국의 민주화 운동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미얀마와 태국의 민주화는 다시 아시아의 민주화를 가속할 수 있다. 아시아에서 민주주의가 확대된다는 건 중국의 고립을 의미하기도 한다. 그러나 아시아의 민주화가 실패한다면 아세안 국가들은 중국의 앞마당이 될 수도 있다. 한국과 일본의 민주주의도 위태로워질 수 있다.
현재 미국은 중국 견제라는 목적 아래 아시아·태평양지역 질서 재편을 모색하고 있다. 한쪽으로는 호주, 인도, 일본, 미국이 참가하는 군사협의체인 ‘쿼드’가 추진되고 있고, 다른 한쪽으로는 한·일 관계 회복을 통한 ‘한·미·일 동맹’을 재건하는 중이다. 한·미·일 동맹은 정치·군사·경제적 블록이지만, 아시아에서 ‘민주주의 블록’ ‘인권 블록’으로 기능할 수도 있다.
과거사 갈등으로 한·일 관계가 어느 때보다 냉각된 상황이지만 아시아 민주주의를 위해서도 두 나라의 대화는 시작돼야 한다. 당장 미얀마의 민주주의 회복이 양국이 머리를 맞댈 주제가 될 수 있다.
김남중 국제부장 nj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