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봄 미국 서던캘리포니아대(USC)에 재학 중인 브라이언 아이비라는 젊은 감독으로부터 이메일로 연락이 왔다. 한국 주사랑공동체 베이비박스를 촬영하고 싶다는 내용이었다. 당시 월평균 20명의 아기가 베이비박스에 보호되던 터라 메일을 제대로 확인하지 못했다. 몇 주 뒤 스태프에게 전화가 왔다. 한국교포 자매인 세라라는 크리스천이었다. 아이비 감독이 학교 식당에서 LA타임스에 소개된 베이비박스 보도를 접하고 졸업작품으로 촬영하고 싶다고 했다.
거절했다. 한국의 아름다운 소재를 촬영하는 게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세라 자매에게 다시 연락이 왔다. 촬영을 위해 모든 준비를 마치고 기다린다고 했다. 한창 꿈을 펼칠 젊은 감독과 스태프였기에 마냥 거절할 수만은 없어 촬영을 허락했다. 무슨 영문인지 한 달을 기다려도 감감무소식이었다. 알고 보니 카메라 장비도 없었고 항공권 숙박비 등도 전혀 준비돼 있지 않았다.
미국 장애인시설에서 봉사활동을 하는 세라 어머니는 어느 날 한국에서 촬영한다는 딸이 걱정돼 점심 기도를 길게 드렸다고 한다. 옆 테이블의 여성이 “한국인은 식기도 때 그렇게 길게 기도하냐”고 물었다. 세라 어머니는 딸의 사정을 말했다.
세라 어머니의 연락처를 받아간 여성은 자신의 남편이 카메라렌즈 회사 회장인데 아직 출품되지 않은 2억원 상당의 영상촬영 카메라를 후원하겠다고 했다. 세라 어머니가 다니던 한인교회는 세라 자매가 베이비박스를 촬영한다는 내용을 듣고 2억원을 촬영팀에게 후원했다.
기적과 같은 도움으로 아이비 감독과 세라 자매, 스태프 등 13명이 한국에 입국해 베이비박스를 촬영했다. 아이비 감독은 탯줄을 달고 베이비박스에 들어오는 아기를 보더니 자리에 덜컥 앉으며 울면서 내게 말했다.
“목사님, 허락하시면 졸업작품이 아닌 제대로 된 다큐멘터리 영화를 찍고 싶습니다. 저는 이전에 마약과 술에 찌들어 허랑방탕한 삶을 살았습니다. 어떻게 하면 목사님처럼 생명을 살리고 예수님을 믿는 삶을 살 수 있을까요.”
나는 감독의 손을 잡고 영접 기도를 했다. 이 기도는 그를 기독 영화를 제작하는 감독으로 만들었다. 1년간 촬영된 영화는 2015년 4월 80분 분량의 ‘더 드롭 박스’(The Drop Box)란 제목으로 캐나다 등지의 1000여개 극장에서 동시 상영됐다. 첫째 날부터 매진행렬에 앙코르 상영까지 했다. 지금까지 1800만여명이 영화를 관람했다.
이 영화는 다큐멘터리 국제영화제에서 7개 부문을 수상했다. 미국 주요 방송국과 언론사도 대서특필했다. 영화 판권을 가진 미국 가정사역단체 ‘포커스 온 더 패밀리’(Focus on the Family)는 영화 수익의 일부로 우리 가족이 함께 살 수 있는 건물을 마련해줬다. 그 도움으로 서울 관악구 주사랑공동체교회에는 베이비박스만 남겨두고, 18명의 장애인 자녀들과 새 거처를 마련해 서울 금천구로 이사했다. 생각지도 않은 일, 계획에도 없던 모든 일을 인도하신 하나님께 감사드린다.
정리=김아영 기자 singforyou@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