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별 뒤 모든 관계로부터 멀어지고 싶어서 한국에서의 삶을 정리했다. 그리고 헝가리 부다페스트로 떠났다. 도착과 동시에 10일간의 자가격리를 알리는 빨간색 스티커를 현관문에 붙였다. 이 스티커는 입국 심사 당시에 헝가리 정부로부터 받은 것이다. 앞으로 열흘간 아무도 찾아오지 않을 것이란 생각에 기분이 좋아지기 시작했다. 누구도 마주치고 싶지 않은 상태였다.
인천공항에서 부다페스트까지는 12시간이 넘게 걸렸다. 기내에서 여러 승객과 함께 있어야 했다. 잠시라도 마스크를 벗기가 무서워서 기내식을 먹지 않았다. 기운이 떨어지면 사탕을 하나씩 입안으로 넣을 뿐이었다. 화장실에 다녀오면 새로운 마스크로 교체했고 움직이지 않아도 수시로 소독제를 발랐다. 한시라도 긴장을 늦추지 않았다.
평소 집순이 체질이라서 자가격리쯤 가뿐하리라 생각했다. 특히나 사람에게 지친 상태였기에 더더욱 집안에 콕 박혀서 나가고 싶지 않았다. 사람과 눈을 마주치는 것도 부담스러운 상태였다. 하지만 실전은 마음대로 흐르지 않았다. 이틀째부터 사람이 그리웠다. 타인과 소통하고 싶었다. 하지만 한국과 시차가 있어서 마음껏 지인에게 연락할 수 없었다. 몇 권의 책을 펼쳤으나 읽히지 않았다. 유튜브에 접속해 동영상을 보는 것도 시시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생전 좋아하지도 않던 탄산음료까지 마시고 싶었다. 자가격리가 9일이나 남은 상황에서 찾아온 비극이었다.
그때 창밖으로 배달원이 눈에 띄었다. 나는 곧바로 헝가리 배달업체 앱을 다운로드한 뒤 꼬부랑거리는 헝가리어를 하나하나씩 번역해가며 탄산음료를 주문했다. 정확히 20분 뒤 누군가 찾아와서 탄산음료를 내려놓고 노크한 뒤 사라졌다. 체증이 내려가는 기분이었다. 탄산음료를 마셔서가 아니라, 두꺼운 현관문을 사이에 두고 타인과 소통했기 때문이다. 사람과 멀어지고 싶어도 결국 사람 없이는 살아갈 수 없는 나를 받아들였다.
부다페스트(헝가리)=이원하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