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권의 유력 대권주자인 이재명 경기지사와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정책 경쟁은 재정 문제와 긴밀하게 얽혀 있다. 이 지사의 기본소득을 비롯한 기본 시리즈, 이 대표의 신복지체계 구상을 실현하려면 막대한 재원이 필요하고, 이는 세금과 뗄래야 뗄 수 없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여권에서 최근 벌어진 ‘기본소득’ 논쟁은 대권 레이스가 본격화하면 ‘증세 논쟁’으로 확전될 가능성이 높다. 4·7 재보궐선거를 앞두고 민감한 증세 논의는 잠시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지만 선거 이후 복지체계 새판 짜기를 놓고 경쟁이 격화되면서 주자들 간에 증세 논쟁도 불붙을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기본소득목적세’의 이재명
증세 논쟁을 선점한 쪽은 이재명 지사다. 이 지사는 대표 브랜드인 기본소득의 정당성을 강조하기 위해 증세를 적극 활용하고 있다. 박상병 정치평론가는 8일 “이 지사는 기본소득으로 상징화된 인물”이라며 “기본소득을 국민에게 설득하려면 증세를 강조할 수밖에 없다”고 진단했다.
경기도의 2차 재난기본소득 지급 이후 현실성이 떨어진다는 비판이 쏟아지자 이 지사는 재원 마련 로드맵을 제시하며 적극 반박했다. 과거 증세의 실패 원인이 ‘조세저항’에 있었다고 보고, 기본소득을 지급해 세금보다 돌려받는 돈이 더 많다는 것을 국민 대다수가 경험하게 해야 한다는 게 그의 논리다.
단기적으로는 증세 없이 일반 예산 조정으로 26조원(1인당 연간 50만원 지급)을 마련해 기본소득 효과를 체감하게 하고, 이후 예산 조정과 함께 조세 감면액도 절반으로 줄여 총 51조원(1인당 연간 100만원 지급)의 기본소득을 지급하는 게 목표다. 장기적으로 탄소세와 데이터세, 로봇세 등 기본소득목적세를 신설하는 방식으로 증세를 하면 금액을 더 늘려갈 수 있다는 게 이 지사의 설명이다.
이런 전략은 여권에서 제기된 ‘코로나19 증세’ ‘부자증세’ 논의를 비판하며 자기만의 색깔을 돋보이게 하는 무기로 활용된다. 이 지사는 지난달 페이스북에 “정치인이 빈자의 지원금을 늘리려고 혜택 못 받는 부자와 중산층에게 증세 요구를 할 수 있을까요? 조세저항과 표 때문에 불가능하다”며 “정치에서 증세 주장이 금기인 이유, 증세 없이 복지를 확대하겠다는 박근혜류 거짓말이 난무하는 이유”라고 적었다.
이 지사 측에서도 선거를 앞두고 증세 이슈를 적극적으로 띄우기 부담스러워하는 기류가 읽힌다. 이 지사와 가까운 민주당 의원은 “4차 산업혁명 시대 변화에 맞는 새로운 조세 체계를 만들어가는 것이지 증세 논의로 보진 않는다”며 “이 지사가 시대에 필요한 화두를 먼저 끄집어낸 것”이라고 말했다.
증세론 아직은 신중한 이낙연
반면 이 대표는 증세와 일정 거리를 두고 있다. 그는 언론 인터뷰에서 ‘국민생활 기준 2030’ 신복지체계 도입을 하려면 증세가 필요하지 않느냐는 질문에 “벌써부터 증세를 이야기하는 것은 놀라운 상상”이라고 답했다. 그러면서 조세지출(정부 재정 지원으로 세금을 깎아주는 것) 감면 등 저항이 덜한 방식으로 재원을 마련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 대표의 신중한 입장은 증세 논쟁으로 전선을 확대하기보다 자신이 총대를 멘 4차 재난지원금 지급 등 현안 마무리가 더 시급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대표 브랜드로 내세운 신복지체계 구상을 본 궤도에 올리는 작업도 만만치 않은 상황이다. 그와 가까운 민주당 중진 의원은 “코로나19 상황에서 증세 문제까지 말하면 경제 상황을 끌고 갈 수 없을 정도로 복잡해질 것”이라며 “코로나19가 극복되고 일상이 회복된 상태에서 증세를 말할 수 있지 지금은 때가 아니다”고 했다.
하지만 결국 시기의 문제일뿐 이 대표가 증세 문제를 피해가긴 어려울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이낙연의 신복지체계 구상엔 아동수당 확대(지급 연령 만 18세, 수당 50만원으로 늘림), 기초연금 및 기초생활보장제도 확대 등이 포함됐다. 이를 뒷받침하려면 수십조원의 추가 예산이 필요하다. 다른 의원은 “최대한 조세지출 감면이나 지출 구조조정으로 감당하려 한다”며 “만약 증세를 하게 되면 대상을 최소화해야 한다는 생각”이라고 말했다.
“비전 보여주는 증세 논의 필요”
갈수록 늘어나는 복지 수요와 코로나19 위기 상황 등을 감안하면 증세는 차기 대선의 주요 이슈로 부각될 가능성이 높다. 문제는 사회적 합의가 부족한 상황에서 국민 혈세로 천문학적인 액수를 조달할 수 있느냐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는 “문재인정부에서 부동산세와 소득세 인상이 여러차례 이뤄진 상황에서 추가 증세를 하기는 어려운 국면”이라며 “소득이 있고 형편이 어렵지 않은 이들에게까지도 혜택을 주려고 세금을 더 내라고 하는 것은 명분상 국민을 설득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조세감면 축소 방안도 현재 수혜 대상을 감안하면 큰 폭의 예산 절감은 어렵다는 지적이다. 정부가 국회에 제출한 조세지출예산서에 따르면 정부의 재정 지원으로 세금감면 혜택을 보는 이들의 68%가 근로소득 7000만원 이하 중산층, 농어민 고령자 장애인 등 취약계층인 것으로 조사됐다. 기업에서도 조세지출 혜택의 70%는 규모가 작은 중소기업에 몰려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윤태곤 더모아 정치분석실장은 “결국 세금을 걷어서 어떻게 쓸지, 앞으로의 사회적 비전을 보여주는 것이 중요하다”며 “기업의 세금을 늘린다면 그 대신 기업활동 관련 규제를 풀어준다든가 하는 식의 접근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백상진 이현우 기자 shark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