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대통령과 고검장들도 우려한 중수청 입법 속도전

입력 2021-03-09 04:02
조남관 검찰총장 직무대행 주재로 8일 열린 전국고검장회의에서 여당이 입법을 추진 중인 중대범죄수사청(중수청) 설치에 반대한다는 의견이 모아졌다. 대검은 회의 뒤 자료를 통해 중수청 설치에 대한 일선 검사들의 우려에 인식을 같이한다면서 국민이 공감하는 방향으로 추진돼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앞서 대검은 중수청 설치에 대한 전국 검사들의 의견을 수렴했는데 설치 반대 의견이 대부분이었다고 한다. 검사들이 중수청 설치에 반대하리라고 예상하지 못한 바는 아니나, 이들의 반대가 반드시 밥그릇을 빼앗기지 않으려는 차원에서만은 아니라고 본다. 검찰의 수사기능을 완전히 박탈하고 중수청을 설치할 경우 권력비리나 부패범죄를 제대로 수사하지 못할 것이란 이유를 내세웠는데, 충분히 수긍할 만한 주장이다. 당장 한국토지주택공사(LH) 투기 의혹 수사를 부패범죄 수사 경험이 풍부한 검찰이 아닌 경찰이 주도하면서 범죄가 제대로 규명될 수 있을지에 대한 의구심이 커지는 상황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이날 법무부·행정안전부 업무보고 자리에서 기소권과 수사권 분리 추진 필요성을 언급하면서도 ‘질서 있게 논의하라’고 당부한 것도 중수청 설치를 무리하게 밀어붙일 경우 생길 부작용을 우려했기 때문일 것이다. 여당 강경파가 상반기 중에 중수청 설치 입법을 완료할 태세인데, 그 시한부터 정해놓을 게 아니라 대통령 언급대로 검찰 구성원들을 포함한 다양한 의견 수렴을 거쳐 신중하게 입법을 추진해야 마땅하다. 자칫 졸속 입법과 그로 인한 혼란으로 검경 수사권 조정 및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등 검찰 개혁을 위한 새 제도의 안착을 그르쳐서는 안 될 것이다. 경우에 따라선 중수청 설치로 반부패 수사 역량이 현저히 떨어진다고 판단될 경우 설치 시점을 몇 년 뒤로 미루거나 입법을 접는 방안도 배제하지 말아야 한다.

중수청 설치 문제로 불거진 일선 검찰의 반발을 조기에 잠재우고 검찰 개혁을 보다 안정적으로 이끌어가려면 차기 검찰총장을 중립적인 인사로 앉히는 일도 중요하다. 혹시라도 지금 일부 거론되는 친정권 검찰 간부들을 총장으로 임명할 경우 ‘권력 방패막이용 인선’이란 오명을 듣게 될 것임은 물론 지금의 갈등을 부채질하는 꼴이 될 것이다. 코로나19로 인한 고통에 신음하고 있는 국민은 몇 년째 계속되는 정권과 검찰 간 갈등에 지칠대로 지친 상태다. 이제라도 합리적이고 중립적인 인사를 총장으로 임명해 양측의 지리한 갈등에 종지부를 찍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