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이종락 (21) 방송사 토론 참석 “인권·법보다 소중한 건 생명” 열변

입력 2021-03-10 03:01 수정 2021-03-10 03:01
시민들이 2013년 6월 서울 여의도 한강공원에서 ‘슬프도록 아름다운 생명, 베이비박스가 지킵니다’라고 적힌 현수막을 들고 생명운동 행진을 하고 있다.

입양특례법은 출생신고를 강제하는 법으로 출생신고를 하지 않으면 의료보험 혜택을 받을 수 없고 입양도 할 수 없게 했다. 이 법이 2012년 8월 시행되자 출생신고를 할 수 없는 미혼모들이 아기를 안고 베이비박스를 찾았는데 그 수가 급격히 늘었다. 수십 명에서 수백 명으로 계속 늘어가니 정신이 없었다.

이들은 대부분 10대 미혼모였다. 외국인 불법체류 노동자, 강간 피해자 등 저마다 아픈 사연이 많았다. 거의 하루에 한 명씩 아기들이 베이비박스에 들어왔다. 아픈 사연들이 내 마음을 후벼팠다. 마음이 너무 괴롭고 슬퍼 우울증이 생길 정도였다.

입양특례법이 제정된 후 베이비박스에 반대하는 목소리도 커졌다. 베이비박스가 아기 유기를 조장한다는 논리였다. 나는 그저 아기들의 생명을 돌보는 것 외에는 관심이 없었다.

어느 추운 겨울날 한 단체가 베이비박스 앞에서 팻말을 들고 ‘베이비박스는 아기 유기를 조장한다’고 시위했다. 나는 그분들에게 “뭐라 안 할 테니 들어와서 식사라도 하고 시위해라”고 말했다. 그분들은 나를 이상하게 쳐다보다 진심을 느껴졌는지 눈치 보며 하나둘씩 교회 안으로 들어왔다.

같이 밥을 먹으며 대화하니 그들은 대부분 미혼모였다. 나는 조심스럽게 말했다. “아이들을 홀로 키우느라 고생이 많습니다. 정말 이곳이 아기 유기를 조장하는 것처럼 보입니까.”

한 엄마가 답했다. “목사님, 죄송합니다. 며칠 시위하면서 봤는데 아니네요. 죽을 수밖에 없는 아기를 살리고 보호하고 계셨네요. 다시 시위하는 일은 없을 겁니다.” 나는 그들과 자녀를 위해 축복기도를 한 뒤 돌려보냈다. 이후엔 시위가 없었다.

한 방송사의 토론회에 초청받았다. ‘베이비박스, 유기를 조장하는가’라는 주제였다. ‘그래, 베이비박스가 유기를 조장한다고 하는 이들의 말이나 들어보자’는 마음으로 참석했다.

토론장에는 법조인, 교수, 정부 관계자 등이 입양특례법의 긍정적 변화, 인권, 관련 법, 통계, 이념 등을 설명하며 ‘베이비박스는 문제가 있다’는 식으로 이야기를 이끌었다. 토론회에 참석한 관객들도 공감하는 분위기였다. 하지만 내 마음에 와닿는 건 한 가지도 없었다.

내 차례가 돼 입을 열었다. “왜 생명에 대해선 말을 안 하시죠. 생명이 법보다 인권보다 중요하지 않나요. 옆집에 불나면 119에 신고하고, 물에 빠진 사람이 있으면 건져야 하는 건 당연한 거 아닌가요. 생명이 있어야 인권도 법도 있는 거 아닌가요”

몇 초간 적막이 흐르고 조용해졌다. 나는 계속 말을 이어갔다. “참석한 분들과 한 가지는 공감합니다. 베이비박스에 아기가 들어오지 않길 가장 간절히 바라는 사람은 바로 저입니다. 저는 소중한 아기의 생명과 베이비박스에 온 미혼모를 지킬 테니 토론회에 참석한 여러분들은 안전하게 아기를 키울 수 있는 나라를 만들어주세요.”

아무도 내 말에 반박하지 못했다. 그때부터 ‘입양특례법으로 생긴 영아 유기 문제를 베이비박스가 해결해주고 있다’는 여론이 조성되기 시작했다.

정리=김아영 기자 singforyou@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