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더 나쁠까요. ①권력자의 자녀를 위해 조직적으로 입시 비리를 저지른 대학 직원들, ②권력자 자녀의 ‘반칙 합격’이 만천하에 공개됐음에도 비호하는 공직자들. ①은 정당하게 합격했을 누군가의 인생을 도둑질한 것이죠. 돌이킬 수 없는 악행입니다. ②는 지금 이 순간에도 피땀 흘려 노력하고 있을 학생·학부모를 ‘개·돼지’ 취급하는 짓입니다. 공정성을 대놓고 허무는 일이기도 하죠. 우열을 가리기 쉽지 않습니다.
교육부가 공정 입시를 시행하는 대학에 예산 지원하는 ‘고교교육 기여대학 지원 사업’이라고 있습니다. 2014년부터 이어지고 있는 사업입니다. 지난 5일 나온 올해 기본계획에는 75개 대학에 559억4000만원을 나눠주기로 돼 있습니다. 대학 규모에 따라 10억원 이상 받기도 합니다.
교육부는 이 사업을 대학들의 대입 정책을 움직이는 지렛대로 활용해 왔습니다. 학생부 위주 전형을 확대했던 시절에는 학생부 종합전형 비중을 높이는 용도로, 올해는 정시 비중을 높이기 위해 활용했습니다. 정책 방향이 오락가락했지만 평가의 가장 기본은 공정성이었습니다.
그래서 공정성 관련 배점이 가장 높습니다. ‘대입 전형 공정성 강화’ 평가 영역이 100점 만점에 45점입니다. 이 영역 안에 ‘전형자료 부정확인 시 입학취소 기준 절차’란 지표가 있습니다. 허위서류 제출자가 확인되면 입학취소하는지 평가하겠다는 것이죠.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의 딸 조민씨가 의사가 되는 경로에 있었던 고려대·부산대는 이 사업의 단골이었습니다. 고려대는 매년 선정돼 지난해까지 97억580만원을 타갔습니다. 부산대는 2017년을 빼고 전부 선정됐으며 모두 34억8087만8000원을 받아썼습니다. ‘공정 입시를 한다’는 두 대학에 나랏돈 132억원이 들어갔습니다. 조씨가 두 대학에 입학할 때 쓴 이른바 ‘7대 스펙’은 법원에서 가짜로 판명 났습니다. 이 사업이 대학원이 아닌 학부 입시를 위해 만들어졌으니 부산대야 억울하다 하겠죠. 하지만 뒷맛이 씁쓸합니다.
올해도 두 대학이 이 사업에 선정될까요. 조씨의 입학서류들이 허위로 판명 났지만 대학들은 아직 입학취소하지 않고 있습니다. 거짓 서류를 받아 합격시켰을 때만 해도 대학들은 아마 업무방해 피해자였을 겁니다. 그러나 허위서류란 사실이 확인됐는데도 움직이지 않는다면 방조자일 겁니다. ‘전형자료 부정확인 시 입학 취소’ 지표에서 점수를 깎여야겠죠.
하지만 교육부는 “감점은 없다”고 합니다. 설명이 이렇습니다. “(해당) 지표는 부정비리를 확인했을 때 입학취소할 수 있는 규정이 완비돼 있는지 보는 지표로 (규정 이행 여부는) 다른 차원의 문제다.” ‘규정이 완벽하면 지키지 않아도 감점 없나’ ‘지키지 않아도 되는 규정은 왜 필요한가’란 질문에 “그 지표는 그렇다”고 잘라 말했습니다.
정유라씨 이화여대 부정입학 사태 때는 어땠을까요. 교육부는 2017년 1월 20일 발표한 사업 기본 계획에서 이화여대를 제외했습니다. ‘공정한 대학’임을 인정해 지원해 오다 입시·학사 특혜 의혹이 불거지자 철퇴를 내린 것이죠.
교육부는 두 사안이 다르다고 말합니다. 이화여대는 대학 총장까지 연루된 조직적인 입시비리였지만 고려대와 부산대의 경우 법원이 판결문에서도 밝혔듯 입시 업무를 방해받은 피해자라는 논리입니다. 이화여대는 앞서 ①의 경우일 겁니다. 교육부는 ①보다 ②의 죄질이 가볍다고 보는 겁니다.
교육부도 자신들이 만든 규정을 스스로 어기고 있으니 무리는 아니죠. 정부·여당은 2019년 말 ‘대학의 장은 위조 또는 변조 등 거짓 자료를 제출하는 등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부정행위가 있는 경우에는 그 입학을 취소하여야 한다’는 법 조항을 신설했습니다. 이듬해 ‘입학전형에 위조 또는 변조 등 거짓 자료를 제출한 경우’를 입학 취소 사유로 명시한 대통령령을 통과시키죠. 법령에 따라 대학은 허위서류 제출자를 입학취소하고, 교육부는 이를 이행하는지 지도·감독해야 합니다. 제도는 완벽해 보입니다. 실행하지 않아도 불이익이 없으니 공정 입시 대학을 지원하는 지표와 닮았네요.
‘검찰 수사가 빠른 탓에 교육부가 조사 타이밍을 놓쳤고 그래서 입학취소가 어렵다.’ 교육부 주장인데 궤변이죠. 비리 의혹이 불거지면 통상 교육부나 대학이 조사를 벌이고 더 면밀한 조사가 필요할 때 교육부 감사팀이 나갑니다. 그래도 밝히지 못한 내용은 수사 의뢰합니다. 기소가 이뤄지면 법원이 판결합니다. 교육부는 판결을 존중해야 하죠. 만약 교육부가 조사해 입학취소했더라도 법원은 입학취소를 다시 취소할 수 있습니다. 조씨 사안은 조사 단계를 넘어 수사와 기소, 판결에 이른 사안입니다. 입학취소하려면 조사 단계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는 건지 도무지 알 수가 없습니다. 조사해 수사기관이 놓친 증거를 찾고 판결을 뒤엎을 논리라도 찾으려는 건가요. 꼭 그렇게 하고 싶으면 수사기관에 자료 공유 요청이라도 해보길 바랍니다.
다만 교육부는 “대법원 판결까지 지켜본다”고 말하는 대신 “법률 검토 중”이란 입장을 강조합니다. 이는 학생·학부모를 대놓고 무시하진 않는다는 기대감을 품게 합니다. 부정 입시 사례 중 정부가 대법원 판결까지 처분을 미뤄준 예는 없었으니까요. 법정에 가기 전에 조사 단계서 입학을 취소해왔죠. 입학취소가 억울하면 입학취소 상태에서 본인이 소송을 걸어 구제받도록 했습니다. 유은혜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이 라디오에서 “법률 검토 중”이라 언급한 지 40여일 흘렀습니다. 교육부는 결론 내는 시점에 대해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죠. 유 부총리께서는 ①이 나쁘다고 생각하시나요 ②가 더 나쁘다고 생각하시나요.
이도경 교육전문기자 yid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