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순절에 돌아본다… 십자가·생명의 길

입력 2021-03-09 03:05
사진가 박춘화 권사가 지난 3일 서울 종로구 새문안교회 1층 갤러리에서 작품을 설명하고 있다. 강민석 선임기자

시시각각 변하는 하늘을 배경으로 십자가가 걸려 있다. 홀씨 애벌레 생선뼈 갈대 도라지꽃 담쟁이 나비 등이 십자가와 어우러져 각각 성경말씀 속 이미지를 만든다. 이미지들의 종착점은 부활이요 생명인 예수 그리스도이다. 사순절에 돌아보는 십자가와 생명의 길이다.

사진가 박춘화(74) 서울 신암교회 권사가 오는 25일까지 서울 종로구 새문안교회 1층의 새문안갤러리에서 생애 세 번째 개인전 ‘생명의 깊은 곳’을 열고 있다. 성경 말씀을 묵상하며 십자가와 생명의 이미지를 연계한 작품 30점이 전시 중이다. 지난 3일 새문안갤러리에서 만난 박 권사는 40여년 사진을 찍어온 여정을 이렇게 말했다.

“창세기 1장에서 하나님은 ‘빛이 있으라’ 하셨고 그 빛으로 창조한 세상을 보시고 ‘보시기에 좋았더라’고 하십니다. 사진가는 빛으로 그림을 그리는 사람인데, 이 말씀을 잘 모르고 사진을 해온 것 같습니다. 생명의 시작인 빛을 되돌아보며 작품을 준비했습니다. 2017년 ‘닿음내림’, 2018년 ‘홀씨, 빛을 머금다’를 제목으로 전시회를 했고 이번엔 생명이 주제입니다.”

박 권사는 자택 옥상이 스튜디오라고 했다. 사진의 배경으로 짙푸른 창공이나 선홍색 여명이 등장한다. 다양한 색깔을 선보이는 하늘이 작품의 배경이다. 박 권사는 “인공적인 배경과 조명으로는 도저히 따라갈 수 없는 다양한 색의 스펙트럼이 바로 하늘에 있다”고 말했다. 렌즈 일체형 ‘똑딱이’와 스마트폰 카메라와 같은 간단한 장비로 작업하는 것도 특징이다. 박 권사는 “사진의 어려움이 너무 직선적이거나 지시적 이미지라는 이유 때문인데 고가의 장비보다 보편적 도구를 통해 모호한 은유를 이미지에 담고자 노력한다”고 말했다.

이번 전시 작품들은 십자가의 의미를 ‘생명-치유-죽음-부활’이란 주제로 풀어낸다. 이를 위해 십자가 옆에 매달린 애벌레, 죽어가는 생명을 나타내는 생선뼈, 회개를 상징하는 보라색 도라지꽃, 십자가 위로 날아오르는 나비 등이 함께 등장한다. 개별 작품에는 제목이나 설명이 없다. 박 권사는 “송신자가 보낸 이미지를 수신자가 방해받지 않고 나름의 생각으로 해석하고 정리하길 바라는 마음”이라고 전했다.

박 권사는 “부족하지만 사순절 전시회를 통해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요 11:25~26)의 말씀이 이루어지는 부활절을 맞이하시면 좋겠다”고 말했다.

우성규 기자 mainport@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