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시각각 변하는 하늘을 배경으로 십자가가 걸려 있다. 홀씨 애벌레 생선뼈 갈대 도라지꽃 담쟁이 나비 등이 십자가와 어우러져 각각 성경말씀 속 이미지를 만든다. 이미지들의 종착점은 부활이요 생명인 예수 그리스도이다. 사순절에 돌아보는 십자가와 생명의 길이다.
사진가 박춘화(74) 서울 신암교회 권사가 오는 25일까지 서울 종로구 새문안교회 1층의 새문안갤러리에서 생애 세 번째 개인전 ‘생명의 깊은 곳’을 열고 있다. 성경 말씀을 묵상하며 십자가와 생명의 이미지를 연계한 작품 30점이 전시 중이다. 지난 3일 새문안갤러리에서 만난 박 권사는 40여년 사진을 찍어온 여정을 이렇게 말했다.
“창세기 1장에서 하나님은 ‘빛이 있으라’ 하셨고 그 빛으로 창조한 세상을 보시고 ‘보시기에 좋았더라’고 하십니다. 사진가는 빛으로 그림을 그리는 사람인데, 이 말씀을 잘 모르고 사진을 해온 것 같습니다. 생명의 시작인 빛을 되돌아보며 작품을 준비했습니다. 2017년 ‘닿음내림’, 2018년 ‘홀씨, 빛을 머금다’를 제목으로 전시회를 했고 이번엔 생명이 주제입니다.”
박 권사는 자택 옥상이 스튜디오라고 했다. 사진의 배경으로 짙푸른 창공이나 선홍색 여명이 등장한다. 다양한 색깔을 선보이는 하늘이 작품의 배경이다. 박 권사는 “인공적인 배경과 조명으로는 도저히 따라갈 수 없는 다양한 색의 스펙트럼이 바로 하늘에 있다”고 말했다. 렌즈 일체형 ‘똑딱이’와 스마트폰 카메라와 같은 간단한 장비로 작업하는 것도 특징이다. 박 권사는 “사진의 어려움이 너무 직선적이거나 지시적 이미지라는 이유 때문인데 고가의 장비보다 보편적 도구를 통해 모호한 은유를 이미지에 담고자 노력한다”고 말했다.
이번 전시 작품들은 십자가의 의미를 ‘생명-치유-죽음-부활’이란 주제로 풀어낸다. 이를 위해 십자가 옆에 매달린 애벌레, 죽어가는 생명을 나타내는 생선뼈, 회개를 상징하는 보라색 도라지꽃, 십자가 위로 날아오르는 나비 등이 함께 등장한다. 개별 작품에는 제목이나 설명이 없다. 박 권사는 “송신자가 보낸 이미지를 수신자가 방해받지 않고 나름의 생각으로 해석하고 정리하길 바라는 마음”이라고 전했다.
박 권사는 “부족하지만 사순절 전시회를 통해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요 11:25~26)의 말씀이 이루어지는 부활절을 맞이하시면 좋겠다”고 말했다.
우성규 기자 mainport@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