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민법은… 태아, 상속순위에 있어 이미 출생한 것으로 본다

입력 2021-03-09 03:07
경남기독교총연합회와 경남성시화운동본부 관계자들이 지난해 11월 경남 밀양시청 앞에서 낙태를 최소화하기 위한 ‘한국형 심장박동법’을 대표발의한 국민의힘 조해진 의원을 응원하고 있다.

2019년 4월 11일 헌법재판소가 형법 제269조 제1항(자기낙태죄)과 제270조 제1항(의사낙태죄)에 대해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다. 이 조항들은 지난해 12월 31일을 시한으로 입법자가 개정할 때까지 계속 적용된다고 판시했기에, 지난 1월 1일부터 그 효력을 잃게 됐다.

그러나 2020년 말까지 대체입법이 행해지지 않았기 때문에 제269조 제2항과 제3항 그리고 제270조 제1항 중 의사 이외의 자에 의한 동의낙태죄와 동조 제2항에서 제4항까지의 규정은 그대로 효력을 유지하고 있는 상태다.

제269조 제1항(자기낙태죄)과 제270조 제1항(의사낙태죄)의 효력이 상실됨에 따라 만약 태아의 독자적 생존이 가능한 시점인 임신 23주 이상의 태아에 대한 낙태가 이뤄져도 처벌할 수 없는 상태가 됐다. 이는 헌법재판소의 결정 취지에도 반하는 것이므로 시급한 대체입법이 요구된다.

대한민국 민법 제3조는 ‘사람은 생존한 동안 권리와 의무의 주체가 된다’고 규정한다. 낙태를 옹호하는 사람들은 이 규정만 본다면 태아는 사람이 아니므로 권리의 주체가 될 수 없고 주장한다. 아무런 보호를 받을 수 없는 존재이기 때문에, 임신한 여성의 자기결정권 보호를 위해서는 낙태가 자유롭게 허용될 수 있다는 성급한 결론을 내린다.

그러나 태아는 일정한 시기가 지나면 출생을 통해 권리와 의무의 주체가 될 수 있는 존재다. 어느 나라 민법이든 태아의 이익을 보호하기 위한 규정을 두고 있다.

태아의 이익 보호를 위한 입법의 모습을 보면 태아의 이익을 위해 모든 법률관계에서 일반적으로 이미 출생했다고 보는 일반적 보호주의 입법(로마법, 스위스 민법), 개별적으로 중요한 법률관계에서만 출생한 것으로 보아 그 범위에서 권리의 주체성을 인정하는 개별적 보호주의 입법(독일 프랑스 한국 민법)으로 구분된다.

우리 민법은 개별적 보호주의 입장에서 다음의 경우와 같은 특별히 중요한 법률관계에서 태아의 이익 보호를 위한 규정을 두고 있다.

첫째, 상속이다. 사람의 생존을 위해 재산을 소유하는 것은 필수불가결하다. 태아의 부가 사망한 경우에 태아가 재산상속을 받을 수 있을 것인지를 보면, 민법 제3조에 따르면 태아는 아직 사람으로 출생하기 이전의 상태이기 때문에 상속받을 수 없다는 결론에 이를 수밖에 없다.

하지만 우리 민법은 제1000조 제3항에서 ‘태아는 상속순위에 관하여는 이미 출생한 것으로 본다’라고 규정해 태아 상태에서 자신의 부가 사망하더라도 부의 재산을 상속받을 수 있도록 하고 있다. 같은 맥락에서 대습상속(제1001조)과 유류분(제1118조)을 받을 권리도 태아에게 인정된다.

둘째,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배상청구다. 예컨대 임산부에 대한 물리적 공격이나 위법한 약물투여로 인해 태아가 기형으로 태어나면 태아에게 불법행위가 행해졌다고 볼 수 있다. 이 경우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배상청구를 할 수 있는지가 문제 된다. 민법 제762조는 ‘태아는 손해배상의 청구권에 관하여는 이미 출생한 것으로 본다’라고 규정해 태아가 불법행위의 직접 피해자이면 손해배상청구권을 인정해 태아의 이익을 보호한다.

셋째, 유증이다. 태아와 일정한 관계에 있는 사람(태아의 부 또는 조부모 등)이 사망하기 전 자신의 재산을 태아에게 물려주는 유언, 즉 유증을 할 수 있느냐의 문제다. 이 문제에 대해 민법 제1064조는 위 제1000조 제3항의 규정을 준용하는 규정(제1064조)을 두어, 태아에게도 유증받을 수 있는 권리를 인정한다.

넷째, 인지(認知)다. 인지란 원칙적으로 부가 혼인 외의 자녀를 자기의 자녀로 인정하는 것이다. 부가 혼인 외의 관계를 통해 상대방 여성이 임신한 경우 그 태아를 자신의 자녀라고 인지할 수 있을 것인지에 관해 민법 제858조는 ‘부는 포태 중에 있는 자에 대하여도 이를 인지할 수 있다’라며 명문으로 인정한다.

이처럼 태아는 일정한 시간이 지나면 출생을 통해 권리의 주체가 될 수 있는 존재다. 따라서 태아의 이익 보호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중요한 법률관계에서 우리 민법은 태아를 사람으로 보아 그 권리를 보호하는 규정을 두고 있다.

즉 태아 상태임에도 불구하고 민법은 일정한 보호를 한다. 따라서 임산부의 자기결정권을 침해한다는 이유로 낙태죄를 아무런 제한 없이 폐지하는 것은 태아의 이익을 보호하는 민법의 기본적 태도에 반하는 것이다.

강봉석 홍익대 법대 교수

[낙태죄 개정이 국민의 명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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