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태 수술 거부한 의료인과 병원, 평등법 위반으로 처벌될 수도

입력 2021-03-09 03:04
진정한 평등을 바라며 나쁜 차별금지법을 반대하는 전국연합(진평연)과 행동하는프로라이프 관계자들이 지난해 12월 17일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차별금지법 제정과 낙태 합법화에 반대하는 시위를 하고 있다. 진평연 제공

더불어민주당 이상민 의원이 발의 준비 중인 ‘평등 및 차별금지에 관한 법률안’(평등법)은 차별금지 사유에 ‘임신 또는 출산’과 법문에 명시되지 않은 기타사유란 의미의 ‘등’을 포함하고 있다(제3조 제1항). 이에 따라 낙태는 ‘임신 또는 출산’이나 기타 차별금지 사유에 해당한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지난달 미국 연방하원을 통과한 평등법안도 ‘성별(SEX)’ 용어의 정의 조항에 성적지향, 성별정체성과 함께 ‘임신, 출산 또는 이와 관련된 의학적 상태’를 포함해 낙태가 차별금지 사유 중 하나가 될 수 있게 했다.

이 의원의 평등법안은 제23조에서 보건의료서비스 제공에서의 차별을 금지한다. 즉, 의료인과 병원이 낙태 관련 의료서비스나 낙태 수술을 거부할 경우, 평등법 위반으로 법적 제재를 당할 수 있다. 미국인 샌드라 로자스는 40년 동안 소아청소년과 간호사로 근무했다. 그중 18년은 일리노이주 위네바고카운티의 보건부 소속 간호사로 근무했다. 샌드라는 아동과 청소년의 건강을 돕는 일을 평생의 소명으로 삼아왔다. 그런데 2015년 일리노이주에서 낙태가 합법화되고 차별금지법이 입법된 후, 샌드라를 포함한 간호사들은 여성을 낙태 시술소로 안내하고, 낙태약을 얻도록 도와주는 방법에 관한 연수를 의무적으로 받게 됐다. 샌드라는 생명을 보호해야 한다는 자신의 양심에 반하는 일을 할 수 없었고, 결국 직장에서 해고됐다.

이 의원의 평등법안은 평등권과 관련된 법률을 제정·개정하는 경우나 관련 제도 및 정책을 수립하는 경우에 평등법의 취지에 들어맞도록 할 것을 의무화하고 있다(제6조 제1항). 이는 후속 입법에 따라 낙태를 권장하는 교육을 할 수 있게 만든다. 미국 캘리포니아주에서는 낙태가 합법화되고 차별금지법이 제정된 후, 2016년 공립학교 7~12학년(12~18세)에게 종합적인 성교육을 하도록 의무화하는 아동·청소년 보건법이 제정됐다. 이 법은 성교육 강의와 교재가 동성애와 동성혼을 반드시 긍정적으로 인정할 것을 요구한다. 또 ‘젠더’ ‘젠더 정체성’ ‘젠더 표현’을 교육하도록 의무화했다. 그뿐만 아니라 성교육 내용에 낙태도 필수사항으로 포함했는데, 낙태에 대해서는 객관적으로 설명하도록 했지만, 종교 교리에 대한 교육이나 옹호는 하지 못하게 했다(제2조). 낙태 반대나 태아의 생명권 보호를 종교적 관점으로 치부해 학교에서 교육하지 못하게 할 수 있다는 의미다.

이 의원의 평등법안이 제정되면 낙태를 반대하는 현수막, 전단지, 벽보 등 옥외광고물을 게시하는 것도 평등법 위반이 될 수 있다. 특정 개인이나 집단에 대한 분리, 구별, 제한, 배제나 불리한 대우를 표시 또는 조장하는 광고 행위는 차별로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제3조 제5항).

낙태가 합법화되고 평등법이 제정된 영국에서는 2012년 9월 프로라이프(생명존중) 단체 ‘어볼트67’의 회원 2명이 낙태시술소 근처에서 낙태에 반대하는 침묵 평화 시위를 진행했다. 당시 이들은 낙태의 현실을 보여주는 사진을 전시하며 시위했는데, 현지 법원은 대중에게 괴롭힘과 정신적 고통을 준다는 이유로 차별금지법(공공질서법) 위반에 따른 법적 제재를 가했다.

이 의원의 평등법안 제8조에는 “국가 및 지방자치단체는 이 법에 반하는 기존의 법령, 조례와 규칙, 각종 제도 및 정책을 조사·연구하여 이 법의 취지에 부합하도록 시정하여야 한다. 이 경우 사전에 국가인권위원회의 의견을 들어야 한다”고 명시됐다. 즉, 평등법에 반하는 기존의 법령, 조례와 규칙, 각종 제도 및 정책을 고치고, 사전에 국가인권위원회(인권위)의 의견을 반드시 듣도록 규정한 것이다.

그런데 인권위는 헌법재판소의 결정과 달리 낙태죄를 전면 폐지하라는 의견을 지난해 국회의장에게 표명했다. 최근 ‘행동하는프로라이프’가 인권위에 제출한 공개질의서에 대해 인권위는 “낙태죄 존치는 여성의 기본권을 침해하므로 낙태죄를 비범죄화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면서 “법 개정 등 입법에 관한 사항은 국회의 소관인바 이후 인권위가 이와 관련해 검토 중인 내용은 없다”고 답변했다. 여성의 기본권 이외에 태아의 인권에 대해서는 고려하지 않았음을 간접적으로 시인한 것이다. 평등법이 인권위가 원하는 자의적인 입법과 정책 수립을 위한 수단으로 악용될 것이 우려되는 이유다. 평등법은 생명감수성이 결핍된 법이 될 공산이 커 보인다.

전윤성 미국변호사 (자유와 평등을 위한 법 정책 연구소)

[차별금지법.평등법 실체를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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