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9일 당대표직을 내려놓고 본격적인 대권 레이스에 돌입한다. 이 대표의 ‘7개월 시한부’ 대표직은 결과적으로 빛보다 그림자가 짙었다는 것이 정치권 안팎의 중론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민감한 주요 현안에 대해 뚜렷한 입장을 밝히지 않는 상황에서 174석 거대 여당을 이끄는 이 대표가 코로나19 재확산과 부동산 급등, ‘추미애·윤석열 갈등’ 같은 정치적 부담을 전면에서 짊어졌다는 것이다.
1년 남은 차기 대선을 앞두고 이 대표가 본인의 아이덴티티(정체성)를 어떻게 선보이느냐에 민심 향배가 달라질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특히 4·7 재보궐선거 성패는 그의 대권 향방을 좌우할 분수령으로 꼽힌다.
이 대표는 9일 마지막 당 최고위원회의를 주재하고 재보선 후보들에게 공천장을 수여한 뒤 대표직을 마무리한다. 이후 대선 비전 ‘신복지체제’ 강연을 하고 기자간담회 등을 통해 소회와 향후 비전을 밝힐 방침이다.
지난해 8월 29일 전당대회 이후 ‘당대표 이낙연’의 행보는 입법 드라이브였다.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법 개정안을 포함한 ‘권력기관 개혁 3법’과 ‘5·18 특별법’ ‘공정경제 3법’ 등의 처리를 주도했다. 올해 들어서도 ‘중대재해법’과 ‘상생연대 3법’ 추진 등 입법 성과에 주력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이 대표가 취임 일성으로 꺼내든 ‘우분투(당신이 있어 내가 있다는 뜻) 협치’는 유명무실해졌다. 민주당 한 중진 의원은 7일 “야당을 끌고 들어와서라도 법안을 같이 처리했어야 했다”며 “당내 여론을 조율하느라 중심을 잡지 못했고 결과적으로 이 대표 혼자 (비난 여론을) 다 얻어맞은 것”이라고 말했다.
당과 이 대표의 지지율을 함께 끌어내리는 악재도 이어졌다. 4월 재보선 공천 강행 결정으로 ‘여당 책임론’이 불거졌고, 그가 연초에 제시한 ‘전직 대통령 사면론’은 역풍만 일으켰다. 검찰 개혁 논란이 극에 달한 시점에선 “윤석열 국정조사” 발언으로 스텝이 꼬이기도 했다. 한 재선 의원은 “(이 대표가) 당대표 핵심 권한인 공천권은 제대로 쓰지도 못한 채 검찰 개혁, 당헌·당규 변경 등 악재만 끌어안았다”고 했다.
대권 경쟁이 조기에 불 붙으면서 검증시계가 빨리 돌아간 점도 이 대표에게 불리한 요소로 작용했다. 이 대표 측 관계자는 “이낙연 대세론이 거세지며 시각도 국무총리 시절보다 비판적으로 변했다”며 “이재명 경기지사가 원외에서 자기 목소리를 내는 동안 이 대표가 먼저 검증 테이블에 올라갔던 상황”이라고 말했다.
다만 이 대표의 최근 지지율이 반등세에 진입한 것은 고무적인 현상으로 풀이된다. 재보선을 승리로 이끈다면 친문 지지층의 표심도 돌아올 것이란 기대감도 나온다. 이 대표 측 핵심 관계자는 “대표직 사임 후에도 현장 리더십을 발휘하며 당에 헌신한다는 입장”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온건과 합리에 기반한 국가적 비전을 제시해 이낙연의 색깔을 보여주는 데 주력할 것”이라고 했다.
양민철 기자 liste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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