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기자] 자정기능 잃은 ‘확률형 아이템’… 이번에 털고 가나

입력 2021-03-08 04:06

괴이한 광경이다. ‘규제 알레르기’가 만연한 요즈음 오히려 국민이 나서서 규제해 달라는 산업이 있다. ‘확률형 아이템’ 이야기다.

확률형 아이템이란 게임에서 일정금액을 투입했을 때 무작위적·우연적 확률에 따라 아이템이 지급되는 형태를 가리킨다. 확률형 아이템에 대한 게이머들의 불만은 ‘극악의 확률’에서 최고 아이템을 뽑는 방식에서 비롯된다. ‘pay to win(돈을 써야 이김)’이 가속화하며 게임의 본질인 플레이하는 즐거움보다 습관적으로 슬롯을 돌려 ‘S급 아이템’이라는 잭팟을 바라는 사행 행위가 게임을 하는 주된 이유가 돼버렸다.

게이머들의 성토는 십수년째 이어지고 있다. 2000년대 중반 국내에 처음 등장한 확률형 아이템은 이후 게임사들이 노골적으로 사행 행위를 표방하며 수억원 상당의 과금을 하다가 가정불화를 겪는 이들의 얘깃거리가 몇 년째 시사 프로그램 단골손님으로 조명받는 지경에 이르렀다.

지난해 12월 이상헌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확률형 아이템의 확률 표기 의무화 등을 담은 게임산업진흥에 관한 법률(일명 게임법) 전부 개정안을 발의했다. 확률형 아이템의 종류, 구성비율, 획득 확률 등 관련 정보를 공개하도록 강제하는 이 법안은 지난달 국회 상임위에 상정됐다.

법제화 시도는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2015년 정우택 당시 새누리당 의원이 확률형 아이템의 확률 명시 등을 담은 법안을 발의했으나 업계의 강한 반발에 부딪혀 무산된 바 있다. 그때 업계에서 꺼낸 카드가 자율 규제다.

업계는 자정 능력을 키우겠다는 취지로 2018년 한국게임정책자율기구를 발족했다. 이 단체는 확률 공개 미준수 게임을 단속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그러나 게입업계의 녹을 먹고 있는 단체는 업체를 제대로 감시하지 못했다. 자율기구의 단속 필터를 통과한 상당수 게임들의 면면을 살펴보면 확률에 확률을 입히는 이중 확률 방식으로 공개해야 할 정보를 ‘영업비밀’로 관리하고 있었다. 이에 더해 조작, 오류 등에 의한 확률 왜곡 현상에 대해서 자율기구는 제대로 된 방지책을 마련하지 못하는 실정이다.

사행성 논란은 ‘20조원 산업’을 향해 가고 있는 국내 게임산업이 도약을 위해 반드시 털고 가야 할 과제다. 국내 1위 게임사 넥슨은 논란이 가중되자 모든 게임의 확률을 공개하고, 게이머 참여형 모니터링 시스템을 갖추겠다고 지난 5일 발표했다.

전향적인 대책에도 게이머들은 “지켜봐야 한다”며 반신반의하고 있다. 내달리는 게임산업의 양발 근육이 충분히 붙었는지 돌아봐야 할 시기다. 먼저 게이머들의 신뢰부터 회복해야 한다.

이다니엘 기자 dn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