野 “정권 폭주 막을 브레이크 사라져”… 새 정치세력화 기대도

입력 2021-03-05 04:02
윤석열 검찰총장이 4일 사의 표명을 한 후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에 들어서고 있는 모습. 연합뉴스

야권은 4일 윤석열 검찰총장의 전격적인 사의 표명을 놓고 기대와 우려가 교차하고 있다. 윤 총장의 사퇴가 4·7 재보궐선거를 앞두고 보수층 결집이나 정권심판론의 기폭제로 작용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동시에 “정권의 폭주를 막을 마지막 브레이크가 없어지는 것”이라며 정권 관련 의혹 수사가 흐지부지될 것이라는 우려도 크다.

정치권에선 “윤 총장이 1년여 앞둔 차기 대권 구도에 상당한 균열을 일으킬 것”이라며 그의 현실정치 등판을 기정사실화하는 분위기다. 재보선 이후에 윤 총장이 보수 야당을 아우르는 새로운 정치 세력의 구심점이 될 수 있다는 시나리오까지 거론된다.

야당은 윤 총장 사퇴의 책임을 여권으로 돌렸다. 김종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은 국민일보와의 통화에서 “자기들이 임명하고, 얼마 전에도 ‘문재인정부 검찰총장’이라고 얘기해놓은 사람 하나 포용을 못했다는 것은 정권에 문제가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주호영 원내대표도 “중대범죄수사청(중수청)법을 만들고 집요하게 압박하는 (여권의) 기획 축출”이라고 주장했다.

야당은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과 윤 총장 간 갈등 국면 이후로 가라앉은 비판 여론이 다시 불붙일 수 있다는 기대감도 내비치고 있다. 국민의힘 한 중진 의원은 “윤 총장이 정권의 헌법 파괴를 말하면서 물러났기 때문에 야권에는 상당히 도움이 되는 정권심판 구도가 만들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국민의힘 내부에선 “여권의 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 시도를 저지할 방파제가 무너졌다”는 지적도 나온다. 또 월성원전 1호기 경제성 평가 조작 의혹 사건 등 정권 관련 수사가 차질을 빚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상당하다. 김기현 의원은 “윤 총장이 자리를 지킨 덕분에 실낱같이 유지돼온 헌법 정신이 이제 속절 없이 무너질 위기”라고 말했다. 윤희석 대변인도 “정권의 썩은 부위를 도려낼 수술용 메스가 없어지는 격”이라고 주장했다.

민주주의와 헌법 정신을 앞세운 윤 총장이 영남·충청권 지지층을 끌어모으는 대권 주자로 부상할 것이라는 평가도 있다. 김도읍 국민의힘 의원은 “헌법 파괴에 반발한 윤 총장은 결국 반문(반문재인)이라는 대의명분 아래 모이는 명분을 만들 수 있다”고 말했다. 윤 총장 부친의 고향인 충남 출신 의원들과 법조인 출신 의원들을 중심으로 ‘윤 총장 띄우기’가 본격화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하지만 박근혜·문재인정부에서 모두 부담스러워했던 윤 총장이 기성 정당이 아닌 제3지대의 구심점이 될 가능성도 만만치 않다. 이렇게 될 경우엔 국민의힘 대선주자들의 존재감이 더 약해질 수도 있다. 일각에선 재보선 이후 윤 총장이 야권 재편의 깃발을 드는 것 아니냐는 관측도 고개를 든다.

윤 총장을 향한 야권의 러브콜은 끊이지 않을 전망이다. 김종인 위원장은 “시간이 가면 (윤 총장을) 한 번 만나볼 것”이라고 말했다.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는 “이제 온 국민이 나서서 불의와 싸울 때”라며 “헌법정신과 법치주의를 지키려는 윤 총장의 앞날을 국민과 함께 응원하겠다”고 했다.

김경택 김동우 이상헌 기자 ptyx@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