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우리나라 1인당 국민총소득(GNI)이 3만1000달러대로 낮아지면서 2년째 뒷걸음질 쳤다. 코로나19 충격에 따른 경기 침체로 경제성장률과 국민소득 증가율 모두 외환위기가 왔던 1998년 이후 처음으로 마이너스를 기록했다.
한국은행이 4일 발표한 ‘2020년 4분기 및 연간 국민소득(잠정)’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1인당 GNI는 3만1755달러(약 3747만원)로 나타났다. 2019년의 3만2115달러보다 1.1% 줄어든 것이다.
2018년 3만3564달러까지 올라섰던 1인당 GNI는 2019년 -4.3%를 기록하며 하방 전환했다. 1인당 GNI가 2년 연속 감소한 것은 글로벌 금융위기를 겪은 2008~2009년 이후 11년 만이다.
결과적으로 문재인정부 출범 첫해인 2017년(3만1734달러) 수준까지 떨어져 정부 핵심 정책인 소득주도 성장이 무색한 상황이 됐다. 1인당 GNI는 국민의 평균적 생활 수준을 보여주는 지표로 활용된다. 국민 소득 지표인 실질GNI도 1년 전보다 0.3% 감소했다. 이 역시 1998년(-7.7%) 이후 첫 마이너스 기록이다.
신승철 한은 국민계정부장은 “지난해 코로나19로 실질 국내총생산(GDP)이 역성장한 데다 환율이 상승하면서 1인당 소득이 줄었다”고 설명했다. 지난해 원·달러 환율은 연평균 1.2% 올랐다.
한국의 1인당 GNI가 G7(주요 7개국) 국가인 이탈리아를 앞지를 것이란 전망도 나오고 있지만, 한은은 “예단하기 어렵다”는 입장을 보였다. 2019년 한국을 근소한 차로 앞섰던 이탈리아의 지난해 1인당 GNI 감소 폭은 한국보다 훨씬 큰 -7%였다. 신 부장은 “이탈리아는 유로화 기준으로 집계하기 때문에 우리와 직접 비교는 곤란하다”며 “조만간 세계은행 같은 국제기구에서 동일한 환율을 적용한 결과를 발표해야 정확히 알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국으로서는 오히려 지난해 1인당 GNI 2만9230달러를 기록한 대만의 추월을 우려해야 하는 상황이다.
한국의 지난해 실질GDP 성장률은 -1.0%를 나타냈다. 한은이 지난 1월 내놓은 속보치와 동일하다. 1998년(-5.1%) 이후 22년 만의 역성장이다. 민간소비의 성장기여도가 -2.4% 포인트로 전체 성장률의 발목을 잡았다. 정부소비(0.8% 포인트)와 하반기 빠른 회복세를 보인 설비투자(0.6% 포인트), 순수출(0.4% 포인트)이 내수 부진을 일부 상쇄했다.
그나마 4분기 성장률은 1.2%로 집계돼 속보치보다 0.1% 포인트 상향 조정됐다. 수출이 반도체, 화학제품 등을 중심으로 0.3% 포인트 높아졌으며 설비투자(0.1% 포인트), 민간소비(0.1% 포인트) 등도 올랐다. 다만 전체 연간 성장률 수치를 바꾸지는 못했다.
우리 경제 규모를 보여주는 명목GDP의 경우 지난해 1924조5000억원을 기록해 전년 대비 0.3% 늘었다. 환율이 상승한 탓에 미국 달러화 기준(1조6308억 달러)으로는 0.9% 감소했다.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이런 성적을 두고 “지난해 실질GDP 역성장을 피해갈 순 없었지만 전 국민적 노력에 힘입어 상대적으로 선방하며 경제 규모 축소만은 막아낼 수 있었다”고 평가하는 글을 페이스북에 올렸다. 그는 또 “어려운 상황에서 1인당 국민소득 3만 달러를 지켜냈다는 데 의미가 있다”고도 했다.
지호일 기자 blue51@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