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사 직전 코미디의 부활… 유튜브에 살판났다

입력 2021-03-04 04:02
코로나19로 좁아진 코미디 무대를 대신해 유튜브가 코미디언들의 새 놀이터로 자리 잡고 있다. 빠른 상황판단 능력과 재치있는 언변을 겸비한 코미디언들의 콘텐츠는 팬들을 사로잡는다. 사진은 화제의 콘텐츠들로 최준(본명 김해준), 이호창(본명 이창호), 권혁수, 김대희의 유튜브 콘텐츠(왼쪽 위부터 시계방향). 유튜브 캡처

한 남자가 영상통화를 걸어온다. 이름은 최준(본명 김해준). 카페 사장인데 느끼함이 특기다. “너무 예뻐서 순간 머리가 하얘졌잖아. 제 이름 외자에요. 외로움을 많이 타는 친구죠. 하지만 걱정 마요. 사랑엔 공격적이니까.” 느글거리는 말투와 부담스러운 헤어스타일에도 묘하게 빠져든다. 온라인에는 ‘준며들다’(최준에게 스며들다)라는 신조어가 생겼고 그의 대사인 “철이 없었죠”가 유행어로 자리잡았다.

이 영상은 유튜브 채널 피식대학 가상 소개팅 콘텐츠 ‘B대면 데이트’다. 제목에서 ‘B급’과 ‘비대면 시대’가 동시에 그려진다. KBS·SBS 출신 신예 코미디언(이용주 정재형 김민수)들이 주축인 피식대학은 ‘한사랑산악회’ ‘05학번 is back’ ‘로니 앤 스티브’ 등 독특한 콘텐츠를 선보이면서 2년 만에 66만 채널로 자라났다.

코로나19로 코미디 무대가 사라진 가운데 유튜브가 코미디언들의 새 놀이터로 자리 잡았다. TV 예능에 견줘도 될 정도의 성장세다.

2018년 tvN ‘코미디빅리그’로 데뷔한 김해준은 앞서 대학교 레트로물 ‘05학번 is back’의 또 다른 부캐(부캐릭터) 쿨제이로 활약하는 등 유튜브를 중심으로 팬층을 다졌다. 그리고 인기에 힘입어 최근 tvN 간판 예능 ‘유 퀴즈 온 더 블럭’에도 진출했다.

‘B대면 데이트’에서 또 다른 스타 이호창도 탄생했다. 이호창은 앞서 ‘개그콘서트’ 귀생충 라스트 헬스보이 등 코너에서 활약한 KBS 공채 출신 이창호 부캐다. 가상의 재벌그룹 김갑생할머니김 미래전략본부장으로 일하는 재벌 3세인 그는 새침함으로 팬들을 사로잡는다. 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의 신년사를 패러디한 영상은 현재 조회 수 70만회에 이른다. 이 같은 인기는 김해준 개인 유튜브 채널, 이창호가 개그맨 곽범과 함께 운영하는 채널 빵송국의 성장세로도 이어지고 있다.

신예에게 유튜브가 얼굴을 알리는 기회의 장이라면 선배들에게 유튜브는 여러 콘텐츠를 시도하는 실험의 장이다. 권혁수는 최근 채널 권혁수감성에서 ‘애드리브 싸이퍼’로 인기몰이 중이다. 유명 게스트를 초대해 5~6분간 대화하는 간단한 얼개인데, “괜찮으시겠어요”로 끝나는 유쾌한 말장난에 힘입어 입소문을 타고 있다. 개그우먼 이세영과의 미용실 싸이퍼는 함께 173만회 조회 수를 기록 중이다. 김대희 역시 부캐 꼰대희의 ‘밥묵자’ 코너로 구독자 43만명을 모았다. 과거 자신이 출연한 인기 개그콘서트 코너 ‘대화가 필요해’를 모방한 상황극으로 친한 동료들을 불러놓고 다짜고짜 애드리브 대결을 펼치는 콘텐츠다. 2017년 ‘좋아서 하는 채널’로 빠르게 유튜브에 뛰어든 강유미는 ASMR(자율감각쾌락반응)과 코믹 상황극을 버무린 영상들로 75만 구독자를 넘어섰다.

전문가들은 유튜브 내 코미디언들의 흥행이 얼마간 예견된 것으로 봤다. 이들의 장기인 애드리브와 콩트는 10분 안팎의 짧은 호흡을 사랑하는 유튜브 문법에 안성맞춤이다. 공개 코미디쇼 당시 여러 코너에서 신선한 아이디어를 짜냈던 이들이기에 1주 1~2개가량 콘텐츠 업로드는 그다지 버거운 일이 아니다.

하재근 대중문화평론가는 “코미디언의 재능인 성대모사나 슬랩스틱, 연기 등은 1시간짜리 방송보다 유튜브에 더 최적화된 숏폼 콘텐츠”라며 “다재다능한 코미디언들에게 유튜브는 끼를 펼쳐놓는 훌륭한 플랫폼인 셈”이라고 말했다.

강경루 기자 ro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