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진보 진영의 거물 엘리자베스 워런(사진) 민주당 상원의원이 1일(현지시간) ‘초부유층 과세 법안(Ultra-Millionaire Tax Act)’을 발의했다. 코로나19 대유행으로 더 벌어진 빈부격차를 완화하고 경제난을 극복하는 데 쓰일 재원을 부자 증세를 통해 마련하자는 취지다.
CNN방송 등에 따르면 워런 의원은 이날 민주당 내 진보적 성향 의원들의 모임인 ‘진보코커스’ 의장을 맡고 있는 프라밀라 자야팔 하원의원, 온건파인 브렌단 보일 하원의원 등과 함께 초부유세 법안을 발의했다. 좌파 지도자인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도 이 법안에 이름을 올렸다. “논쟁적인 이 법안은 워런 의원이 2019년 민주당 대선 경선에서 내세웠던 공약과 유사하다”고 CNN은 평가했다.
워런의 초부유세 법안은 순자산이 5000만 달러(약 562억원) 이상인 가구에 연 2%의 세금을 부과하고, 10억 달러(약 1조 1250억원)를 초과하는 가구에는 1%의 추가 세금을 더해 총 3%의 세금을 물리는 내용을 골자로 한다. 블룸버그통신은 법안대로라면 미국 상위 부자 100명이 연간 세금으로 780억 달러(약 87조7890억원)를 더 내야 한다고 전했다.
법안 작성에 참여한 이매뉴얼 사에즈와 가브리엘 주크먼 UC버클리대 교수는 약 10만 가구가 초부유세 부과 대상이 될 것이라며 이는 전체 미국 가구의 0.1%에도 미치지 못하는 수준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초부유세가 현실화될 경우 향후 10년 동안 약 3조 달러(약 3377조원)의 세금을 징수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워런 의원은 성명을 통해 “억만장자들의 재산은 코로나19 사태가 시작되기 전보다 40%나 더 증가했고, 상위 0.1%가 하위 99%보다 낮은 실효세율을 적용받고 있다”며 “새 세입은 조 바이든 대통령과 민주당의 최우선 과제인 보육과 초중등 교육, 기반시설에 투자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다만 블룸버그통신은 “바이든 대통령이 기업과 고소득층에 대해서는 증세를 추진하겠다는 입장이지만 소득 아닌 재산에 세금을 물리는 일은 지지하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며 법안 통과 여부가 불확실하다고 전망했다.
코로나19로 심화된 불평등을 해소하고 구멍난 정부 재정을 메우기 위해 부유세 등 증세 카드를 꺼내야 한다는 논의는 세계 곳곳에서 한창 진행되고 있다.
스페인 하원은 지난해 12월 대기업과 고소득자 증세 내용이 담긴 예산안을 통과시켰다. 30만 유로(약 4억517만원) 이상 고소득자 세율을 45%에서 47%로 올리고 연간 20만 유로 이상 자본이익에 대해서는 3% 포인트씩 세금을 인상하는 안이다.
영국 정부는 3일 발표할 예산안에 법인세 및 소득세 인상 계획을 포함한 것으로 알려졌다. 온라인 배달에 세금을 부과할 수 있다는 보도도 나왔다.
중도좌파 성향 알베르토 페르난데스 대통령이 집권한 아르헨티나는 지난해 12월 최상위 부자 1만2000명에게 일시적으로 부유세를 부과해 30억 달러를 조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형민 기자 gilel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