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정불간섭은 중국의 오래된 외교 원칙이다. 1953년 저우언라이 총리가 신중국 수립 후 인도와 통상·외교 협정을 맺을 때 처음 제시한 평화 공존 5원칙에 담겼다. 중국 공산당은 1956년 제9기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에서 주권 존중 및 영토 보존, 상호 불가침, 상호 내정불간섭, 호혜 평등, 평화 공존의 5개 원칙을 당장에 명기해 대외 정책 기조로 삼았다. 이런 기조는 ‘중국 특색의 대국 외교’를 내세운 시진핑 국가주석 시대에도 유지되고 있다. 과거 미국과 중국이 채택한 공동 문서에도 내정불간섭 존중은 등장한다. 1972년 미·중 관계 정상화 기반을 닦은 상하이 코뮤니케는 물론 97년 장쩌민 주석의 방미, 2009년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방중을 계기로 채택된 미·중 공동선언에도 모두 들어 있다. ‘양국은 인권 문제에 있어 중대한 차이가 있음을 인정한다’ ‘상대방의 핵심 이익을 존중한다’는 식으로 표현만 달라졌을 뿐이다.
중국은 요즘 홍콩, 대만, 신장에서의 인권 침해 의혹이 불거질 때마다 내정불간섭을 앞세워 방어막을 치고 있다. 국제사회가 피해자 증언, 조사 보고서를 내밀어도 어디까지나 중국 내부의 문제라고 의혹 제기 자체를 인정하지 않는다. 국가보안법 시행 이후 홍콩을 탈출하는 인사들에게 인도주의적 조치를 제공하는 국가들을 향해선 “내정간섭을 중단하라”고 목청을 높인다. 이들 나라에 빈틈이 보인다 싶으면 관세 등의 수단을 동원해 보복하기도 한다. 호주가 대표적이다. 다른 나라 예를 들 것 없이 중국은 주한미군 사드 배치에 반대하며 한국에 경제적 보복 조치를 취했다. 물론 중국은 정부 차원에서 한 일은 아니라고 주장한다.
중국은 미얀마 군부 쿠데타에 대해서도 내정이라며 거리를 두고 있다. 미얀마 군경의 무차별 총격으로 시민들이 희생되는 상황에서도 입장은 달라지지 않았다. ‘미얀마 측이 헌법과 법률의 틀 안에서 갈등을 적절히 처리해야 한다’는 것이다. 얼핏 중국은 모든 외교 사안에 주권 존중, 내정불간섭 원칙을 적용하는 것 같지만 편의주의적이라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간섭과 불간섭의 기준은 중국이 규정한 ‘핵심 이익’이냐 아니냐다. 국제사회에서 인권은 때때로 주권을 초월해 적용되는 규범적 가치로 인정받지만 중국에서만큼은 예외다. 중국은 오히려 미국 등 서방 세계가 인권 문제를 정치화해 자국을 압박하는 수단으로 활용한다고 보고 있다. 그들이 만든 인권 잣대로 다른 나라를 평가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이렇게 반문한다. 코로나19 대응 실패로 50만명 이상이 숨진 미국이 과연 중국을 향해 인권 운운할 자격이 있는가. 아프가니스탄 파병 당시 현지 민간인을 살해하고 고문한 전력이 있는 호주가 중국의 인권을 비판할 처지가 되는가.
중국은 공산당 창당 100주년인 올해 탈빈곤 사업을 통해 1억명의 농촌 인구가 절대 가난에서 벗어났다고 대대적으로 선전하고 있다. 이를 놓고 중국 관영 매체는 “중국 여건에 맞는 독자적인 인권 개발 노선을 구축했다”고 평가했다. 세계에 보편적으로 적용되는 인권 기준이란 있을 수 없고 인권도 내정에 속한다는 주장은 북한이 유엔 인권결의안 채택에 반대해 해오던 얘기다. 중국은 스스로 패권을 추구하지 않는다고 하지만 어쨌든 미국과 세계 1위 자리를 놓고 경쟁하는 나라다. 국력이 커지고 국제무대에서 입김이 세질수록 건설적 개입이 필요한 순간들이 생긴다. 듣기 싫은 소리에는 내정 간섭이라 윽박지르고 정작 나서야 할 문제에는 주권 존중을 방패 삼아 뒷짐 지고 있는 건 아무리 생각해도 시 주석 시대 중국 특색의 대국 외교와는 거리가 먼 것 같다.
베이징=권지혜 특파원 jhk@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