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가 있는 휴일] 시를 쓴다는 것

입력 2021-02-25 19:36

영혼을 파먹고 살았다.
50년을 파먹었는데
아직도 허기가 진다.

삶의 흔적을 남기려고
영혼을 파먹는
그게 허영 때문인지
진실 때문인지 모르겠다.

번개 같은 목숨
보고 듣고 깨닫기도 전에
영혼 파먹기를 해온
욕망의 구더기여.

이제 그만 깨어 날아다오.
높이 날지 못하면 어떠랴.
멀리 가지 못하면 어떠랴.
천 날을 견뎌 하루를 사는
하루살이라도 좋다.

날아다오 날아다오.

번데기에서 깨어난 날개들아
우리 같이 날아보자.
내가 너희 형제 아니더냐.
너희가 우리 이웃 아니더냐.

김형영 시선집 ‘겨울이 지나간 자리에 햇살이’ 중

50년 넘게 시를 쓴 시인은 시를 쓴다는 것을 영혼을 파먹는 것에 비유한다. 욕망의 구더기라고 자신을 낮췄다가 단 하루를 사는 하루살이라도 좋다고 스스로를 위로한다. 높이 날지 못해도, 멀리 가지 못해도 날아달라고 스스로를 돌아본다. 시선집 출간일인 15일은 시인 김형영이 숙환으로 영면한 날이기도 하다. 그는 ‘시인의 말’에서 “계획 없이 살아도 편안한 나이가 된 것 같다…돌아보면 제멋에 취해 덤벙대던 젊은 날의 멋도-좀 서툴긴 했어도-그 나름대로 멋이 있었지만, 무언가에 매여 사는 것 또한 그 못지 않다는 생각도 든다”고 적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