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다음달 초 당 대표직을 내려놓고 대권 행보에 나선다. 그는 당 대표를 거쳐 대선주자로 발돋움하는 ‘문재인 모델’을 택했고, 지난해 8월 전당대회에서 60.77%의 압도적 득표율로 당권을 거머쥐었다. 당 대표로 지낸 7개월에 대한 평가는 엇갈린다. 당내 지지 기반을 다졌다는 분석도 있지만, 지지율만 놓고 보면 다소 초라한 성적표다. 지난해 4월 총선 직후 40%대에 육박했던 지지율은 반 토막 났고, 지난달에는 추격자 이재명 경기지사에게 역전당했다.
여권에선 이 대표가 자기 색깔을 명확하게 드러내지 못해 지지율을 잃었다는 분석이 많다. 거대 여당의 대표로서 정책과 입법 추진 과정에서 본래 강점인 중도 확장성을 살리지 못했고, 동시에 강성 친문 지지층의 지지도 잃었다는 것이다. 이 대표는 특히 문재인 대통령의 높은 지지율을 등에 업고 친문 대표 주자로 입지를 다져왔는데 임기 후반기 문 대통령의 지지율이 떨어지면서 이 대표 지지율이 동반 하락하는 현상도 나타났다.
이 대표의 최대 강점은 안정감과 균형감을 기반으로 한 ‘중도 확장성’이 꼽힌다. 하지만 임기 초반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과 윤석열 검찰총장 갈등이 격화되면서 여당 대표로서 제 목소리를 내기 어려운 상황이 펼쳐졌다. 민주당 재선 의원은 24일 “양극단이 싸우고 있는 상황에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리더십을 보여주지 못한 느낌이었다”고 평가했다.
유례없는 추·윤 갈등에 개혁 입법의 성과도 빛이 바랬다. 민주당은 지난해 말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법 개정안을 필두로 ‘공정경제 3법(상법·공정거래법·금융그룹감독법)’ 개정안, 중대재해기업처벌법까지 일사천리로 통과시켰다. 이 대표는 “1987년 민주화 이후 가장 크고 가장 많은 개혁을 실현했다”고 자평했지만, 입법 성과가 고스란히 ‘대권 주자 이낙연’의 공으로 인정받은 건 아니었다.
오히려 법안 처리 과정에서 보여준 특유의 신중함과 개혁 법안 내용의 일부 후퇴는 강성 지지층을 돌아서게 했다. 당 지도부 출신 의원은 “강성 지지자들은 당이 나서서 윤 총장을 공격해주길 바랐으나 이 대표로서는 수용하기가 쉽지 않았다”며 “결국 강성 지지층에서 지지율이 하락한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호남 지역의 한 의원은 “180석을 만들어줬음에도 일 처리가 시원시원하게 안 되는 인상이 강했다”며 “그래서 ‘사이다’ 스타일의 이재명 지사와 비교하는 시선이 많다”고 했다.
특히 새해 첫날 이 대표가 야심 차게 제기했던 전직 대통령 사면론은 악수로 판명 났다. 사면론을 계기로 친문 대표 주자로서의 입지도 흔들리고 있다. 이 대표는 문재인정부 초대 국무총리로서 정부의 성공과 계승을 앞세우며 친문 지지자들의 신임을 얻었다. 지난해 총선 때 서울 종로에 출마해 황교안 당시 미래통합당 대표를 꺾고 총선 대승을 이끌면서 지지율이 40%대까지 치솟기도 했다.
정부와 한배를 탄 이 대표에게 임기 후반으로 갈수록 떨어지는 문 대통령의 지지율은 딜레마로 작용하고 있다. 리얼미터 여론조사 결과를 분석해보면, 문 대통령과 이 대표 지지율의 동조화 현상이 보인다. 박상병 정치평론가는 “국민은 이 대표의 구체적이고 개별적인 정치 행보보다 전반적으로 문재인정부와 같이 연결해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고 분석했다.
이 같은 현상은 특히 민주당 지지층 내부에서 더욱 또렷하게 드러난다. 지지 정당을 민주당이라고 밝힌 응답자의 지지율을 분석해보면, 경쟁자인 이 지사는 지난해 1월 지지율이 10%를 밑돌았으나 이후 가파른 상승세를 보이며 지난달 40%를 넘어섰다. 반면 이 대표는 민주당 지지층에서 60%대의 높은 지지율로 출발했지만, 꾸준히 하락해 지난달 27.1%를 기록하며 이 지사에게 역전당했다(자세한 사항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이 대표 측은 “문 대통령 지지율과 연동돼 있다 보니 일어나는 현상”이라며 지지율 하락에 큰 의미를 두지 않으려는 분위기다.
오히려 이 대표 측에선 당장 눈에 보이는 지지율은 떨어졌지만, 당내 기반을 다지고 안정적인 리더십을 보여줬다는 점을 소득으로 꼽는다. 한 핵심 인사는 “선대위원장을 맡아 총선 승리를 이끌면서 당내 지지 세력을 확보했고, 이후 당 대표로서 당에 대한 이해도와 일체감을 높였다”고 자평했다. 또 다른 의원도 “코로나19 국면과 정권 후반기에 이 정도로 분란 없이 당을 이끌어 온 것은 평가받을 만한 일”이라고 했다.
당 안팎에선 4·7 서울·부산시장 보궐선거 성적표가 이 대표의 지지율 반등 여부를 판가름할 변곡점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서울과 부산을 모두 야권에 내주면 대권 주자로서 치명상을 입을 것이라는 게 중론이다. 반면 민주당 소속 전직 시장들의 귀책 사유로 치러지는 이번 선거에서 모두 승리하거나 파급력이 큰 서울시장 선거에서 이긴다면 향후 대권 레이스의 동력을 확보할 수 있다.
4·7 보선 결과는 친문 그룹 내에서 끊이지 않는 ‘제3후보론’과도 연동돼 있다. 서울시장 선거에서 지면 곧바로 ‘이낙연 책임론’이 분출할 수 있다. 대선주자로서의 이 대표 입지가 흔들리고, 친문 그룹에서 이 대표가 이 지사의 대항마가 될 수 없다는 판단을 내리게 되면 제3후보론에 힘이 실릴 가능성이 크다. 민주당 관계자는 “당 대표직을 내려놓더라도 보궐선거는 사실상 연장선으로 봐야 한다”며 “이 대표로서는 적어도 한 곳에서는 이겨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판 이현우 기자 pa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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