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는 ‘흰 소띠의 해’다. 계절은 아직 겨울을 보내기 싫은지 흰 눈을 뿌리고 있지만, 전국 곳곳에서 꽃소식이 전해진다. 웅장한 소의 기상을 느끼고 봄꽃을 즐기기에 안성맞춤인 곳이 있다. 전북 부안군이다.
부안군 상서면에 쇠뿔바위봉 산행 코스가 있다. 변산반도국립공원 내변산에 개방된 등산로 6곳 가운데 하나인 어수대(御水臺)~쇠뿔바위봉~청림마을 코스다. 전체적으로 소가 한 마리 누운 형세다. 대표적인 산행 기점이 되는 어수대를 시작으로 우슬(牛膝)재, 비룡상천봉, 와우봉(臥牛峰·468m), 쇠뿔바위봉을 품는다. 해발 고도는 높지 않지만 온갖 형상의 기암괴봉이 즐비한 데다 조망이 트인 곳이 많아 산행 내내 감탄사가 끊이지 않는다.
상서면 유동쉼터에서 출발한다. 멀리 거대한 병풍바위가 웅장한 위용을 뽐내고 있다. 이정표를 따라 걸으면 어수대다. ‘임금이 물을 마시는 장소’란 이름으로, 부안댐 물이 시작되는 곳이다. 신라 경순왕이 경치에 빠져 3년간 머물렀던 곳이어서 이름을 얻었다.
어수대 작은 연못가에 황진이와 더불어 조선의 대표적인 시기(詩妓)로 꼽히는 부안 기생 매창(梅窓·1573~1610)의 시비가 세워져 있다. 매창은 당대 최고의 시 비평가였던 허균을 비롯한 이름난 문사들과 교류했다고 한다.
어수대에서 20분가량 오르막길을 걸으면 안부에 닿는다. 우슬재다. ‘우슬’은 이름 그대로 소의 무릎을 뜻한다. 바위 산 너머 계화도 방향으로 펼쳐지는 풍경이 시원하다. 이곳에서 왼쪽으로 길을 잡는다. 가파른 능선을 따라 오르면 길은 평탄해지고 눈앞이 탁 트인다. 우슬재에서 쇠뿔바위봉까지 암릉은 소의 몸통에 해당한다. 비룡상천봉을 지나면 비교적 완만한 능선이 한동안 이어진다. 하지만 전날 내려 쌓인 눈 때문에 걸음은 더욱 힘들어졌다. 바위산 중간 나무가 우거진 능선에 많은 봉분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와우봉은 소의 정수리에 해당된다. 마루금 오른쪽 건너편으로는 능가산의 최고봉인 의상봉이 절벽 위에 우뚝 솟아 있다. 마천대라고 불리던 봉우리는 신라 고승인 의상대사가 ‘의상사’라는 절을 세워 의상봉이란 이름을 얻었다고 전한다. 왼쪽으로는 우금산 울금바위가 인상적이고, 그 너머로 내장산이 어렴풋이 윤곽을 드러내고 있다.
고래등바위에 도착하면 바로 앞에 쇠뿔바위봉이 소의 뿔과 같이 동서로 두 개의 뿔을 세우고 있다.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동쇠뿔바위봉. 진안의 마이산을 연상케 한다. 아쉽게도 정규코스에서 벗어나는 비법정탐방로다.
전망대는 서쇠뿔바위봉에 마련돼 있다. 나무 데크가 깔려 있고, 정상석은 없다. 이곳에 오르면 사방으로 펼쳐진 변산의 절경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왼쪽으로는 고래등바위와 동쇠뿔바위봉이, 오른쪽으로 지장봉을 비롯한 기암괴봉들이 첩첩 몸을 포개고 있다. 멀리 부안댐도 눈에 들어온다. 발아래는 청림마을이 시원하게 펼쳐진다.
길을 다시 되돌아 나와 청림마을로 접어든다. 나무계단과 가파른 길이 이어진다. 40분쯤 산을 내려가면 지장봉에 다다른다. 바위 바로 밑에서 올려다보면 서쇠뿔바위봉위에서 봤을 때와 달리 규모가 압도적이다. 지장봉에서 내려서면 새재갈림길이다. 지장봉과 쇠뿔바위봉의 어울린 모습을 보려면 부안댐 상류의 중계교 부근 방향으로 진행하면 된다.
새재에서 왼쪽으로 길을 잡아 30분가량 내려서면 청림마을이다. ‘변산 아씨’라고 불리는 변산바람꽃 군락지로 유명한 곳이다. 변산바람꽃은 10㎝ 정도의 아주 작은 꽃으로, 내변산 일대에서 처음 발견된 한국 토종야생화다. 나무 밑 마른 풀잎 사이에서 복수초와 함께 봄이 왔다고 소리 없는 아우성을 지른다. 하얀 피부를 뽐내며 매혹적인 모습으로 벌과 나비를 유혹한다. 변산바람꽃은 자세히 봐야 한다. 꽃잎으로 착각하게 만드는 하얀 꽃받침과 연녹색 꽃잎이 이색적이다. 꽃받침 안쪽 연한 자색의 수술과 섞인 깔때기 모양이 꽃잎이다.
군락지에서 벗어나면 청림마을이다. 마을에서 올려다보면 뭉툭한 두 뿔의 형상이 뚜렷하다. 이곳에서 출발지인 유동쉼터는 약 2㎞ 거리로, 걸어서 40분쯤 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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