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도한 예방적 살처분에 반대하며 생명을 경시하는 방역에 경종을 울렸던 경기 화성시 산안마을이 결국 백기 투항했다. 축산업 허가를 취소할 수 있다는 방역 당국의 위협에 예방적 살처분을 받아들였다. 산안마을 관계자는 22일 “지난 19일 3만7000마리를 살처분했고 출하하지 못한 125만개의 유정란은 이번 주 중 수거해 폐기할 예정”이라고 전했다.
예방적 살처분 대상에 오른 지난해 12월 23일부터 58일간 이어 온 저항은 끝났지만 문제가 근본적으로 해결된 것은 아니다. 산안마을 관계자는 “버틸 힘이 없어 살처분에 응하지만 잘못된 규정은 반드시 바뀌어야 한다”고 토로했다.
산안마을 사태가 방역 정책에 던진 물음표는 크게 세 가지다. 우선 해당 정책이 유효하냐는 것이다. 농림축산식품부는 2018년 12월부터 예방적 살처분 범위를 확진농장 반경 500m에서 3㎞로 확대했다. 축산차량 등이 원인인 ‘수평 전파’를 원천 차단하기 위해 범위를 늘렸다. 그런데도 21일 기준 100건의 확진 농장이 나왔고 2861만 마리의 가금류가 살처분됐다. 살처분 마릿수가 역대 두 번째다.
방역당국의 노력으로 수평 전파 사례가 ‘0건’을 기록하기는 했다. 다만 이것이 예방적 살처분 대상 확대보다는 이동 통제나 수시 소독 및 점검 등 예방 중심의 방역 정책이 유효했을 가능성이 더 높다. 농림축산검역본부가 지난해 가동한 축산차량의 확진 농장 방문 예방 시스템이 효과적이었다는 평가도 한몫 한다.
정부가 스스로 권장한 동물복지축산농장 사육 방식을 무력화한 것도 문제다. 동물복지축산농장은 병아리를 키워 첫 계란을 생산하기까지 일반적으로 4개월이 걸린다. 최소 6개월 걸린다는 산안마을식 사육 방식은 다음 달 재입식이 허용돼도 빨라야 9월에나 결실을 본다. 10월부터 철새가 도래한다는 점을 고려하면 1개월 정도 유정란을 생산하다 또다시 예방적 살처분 우려를 해야 한다. 산란계 업계 관계자는 “이런 식이면 누가 친환경 축산하겠나”라고 꼬집었다.
예방적 살처분에 따른 농촌 일자리 감소도 간과할 수 없다. 살처분 보상비로는 향후 병아리 구입비와 사료비, 산안마을 주민 생계유지도 버겁다. 고용인 12명의 감원도 고려하고 있다. 지난달 농림어업 취업자 수는 전년 동월 대비 1만4000명 감소했다. 문재인정부 출범 이후 낙폭이 가장 컸다. 환경농업단체연합회 등 시민사회단체는 공동 성명서를 통해 “정부는 무차별 살처분으로 인한 과잉 방역 정책 실패를 인정하라”고 밝혔다.
세종=신준섭 기자 sman321@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