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자로 설비까지 만들어 놓고도 탈원전 정책으로 건설에 제동이 걸렸던 신한울 3·4호기가 일단은 백지화 위기를 모면했다. ‘공사계획인가’ 기한이 2023년 말까지 연장되면서 한숨을 돌렸다. 사업자인 한국수력원자력은 기한 내 인가를 받지 못할 경우 취득한 발전사업 허가 자체가 취소되는 최악의 상황을 피했다. 허가가 취소되면 사업에 제동이 걸리는 것뿐만 아니라 손해배상 등 다양한 문제가 불거진다.
일단 시급한 갈등을 봉합하기는 했지만 땜질식 처방이란 지적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탈원전 정책 기조를 고려할 때 연장된 공사계획인가 기한 내에 정부가 시공을 승인할 가능성은 ‘0’에 가깝다. 결국 8000억원 가까이 투입된 비용을 손실로 보고 보전하는 절차가 진행될 수밖에 없다. 국민이 낸 돈으로 손실을 보상해야 할 형국이다보니 정부 책임론이 불가피하다. 이 문제를 내년에 출범하게 될 차기정부에 떠넘겼다는 비판이 뒤따른다.
산업통상자원부는 에너지위원회를 개최해 신한울 3·4호기의 공사계획인가 기한을 오는 27일에서 2023년 12월로 연장했다고 22일 밝혔다. 전기사업법 상 발전사업자가 발전사업 허가를 취득한 뒤 4년 이내에 공사계획인가를 받지 못하면 허가가 취소된다. 이 경우 발전사업자는 2년간 신규 발전사업 추진이 불가능하다. 한수원이 이 규정에 걸리면 정부의 에너지전환 정책에도 제동이 걸린다. 9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 발맞춰 한수원에서 추진하는 태양광·풍력 등 신재생에너지 사업을 진행할 수가 없게 된다. 에너지위원회 결정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부분으로 보인다.
연장을 결정하지 않을 경우 손실 보전이 어렵다는 점도 주요 고려 대상이었다. 신한울 3·4호기에는 이미 부지 조성과 사전 제작에 7790억원 정도의 비용이 소요됐다. 이중 4927억원은 두산중공업과 기자재 업체들이 원자로 설비 및 터빈 발전기 제작에 투입한 비용이다. 정부는 이 비용을 보전해주기 위해 전기요금과 함께 징수하는 전력산업기반기금을 활용할 방침이다. 하지만 아직 관련법 개정 작업이 끝나지 않은 상태다. 법 개정 전에 허가가 취소되면 소급 적용할 방법이 없다. 그렇게 되면 탈원전 정책으로 갑작스레 입은 손해인만큼 손해배상청구 등 법정 싸움으로 비화할 소지가 다분하다. 법 통과까지 시한을 벌 필요가 있었던 것이다.
문제는 이번 연장 결정이 ‘한시적’인 조치라는 데 있다. 탈원전 기조가 유지될 경우 허가 취소를 피하기는 어렵다. 신한울 3·4호기 건설이 재개될 가능성이 지극히 낮기 때문이다. 이를 감안하면 연장 기한인 2023년 12월 이후에는 한수원의 사업 제동과 함께 손실 보상 작업이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보상비가 국민이 매달 내는 전기요금에서 3.7%를 떼어내 적립한다는 점에서 지급 시점에 여론의 저항이 불거질 수 있다. 차기정부가 이를 감당해야 한다. 한 원전업계 관계자는 “책임 떠넘기기”라고 비판했다.
세종=신준섭 기자 sman321@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