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령 아이’ 막아보자… 대법, ‘출생 통보제’ 시행 밑작업 착수

입력 2021-02-22 00:04
8살 딸의 호흡을 막아 숨지게 한 혐의를 받는 A씨가 지난달 17일 휠체어를 탄 채 구속영장실질심사를 받기 위해 인천지방법원으로 들어서고 있다. 뉴시스

대법원이 출생 통보제 시행 시 필요한 세부 절차를 검토하는 작업에 착수했다. 지난해 아동의 출생 시 등록될 권리를 인정한 판례를 내놓은 이후 후속 조치에 나선 것으로 풀이된다. 해당 제도가 도입되면 서류상 존재하지 않는 이른바 ‘유령 아이’가 유기·방임되는 상황을 예방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21일 국민일보 취재에 따르면 대법원 법원행정처는 조만간 출생신고제도 개선 방안에 관한 연구 용역 기관을 정하고 6개월간 연구를 진행하기로 했다. 연구에는 출생 통보제와 관련된 해외 입법례와 국내 구현 방안 등이 담길 것으로 보인다. 출생 통보제는 분만을 담당한 의료기관이 공공기관에 아이의 출생을 통보하는 제도다. 국가인권위원회는 미등록 아동 학대를 막기 위해 해당 제도의 도입이 시급하다는 입장을 여러 번 밝혀 왔다.

대법원이 나선 건 지난해 판례와 무관치 않다. 대법원은 지난해 6월 출생신고를 할 수 있는 미혼부의 범위를 확대해야 한다는 취지의 판결을 내렸다. 현행법은 ‘엄마의 인적 사항(성명·등록기준지·주민등록번호 등)을 알 수 없는 경우’에 한해 미혼부의 출생신고를 허용하는데, 이를 엄격히 해석하지 말라는 것이다. 행정처 관계자는 “아동에게 출생 등록될 권리가 있다는 판례가 나오면서 제도 개선에 참고하기 위해 연구용역을 의뢰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그동안 출생신고에 대한 문제점은 꾸준히 제기돼 왔다. 2015년 ‘사랑이법’으로 불리는 가족관계등록법 개정안이 시행되면서 미혼부의 출생신고가 가능해졌지만, 받아들여지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김희진 국제아동인권센터 변호사는 “친모의 정보를 완전히 몰라야 한다고 보는 판결과 몇 가지만 몰라도 생부의 출생신고를 받아주는 판결 등이 엇갈려 왔다”고 지적했다.

특히 유부녀인 엄마가 혼외 관계에서 낳은 아이는 사각지대에 놓일 가능성이 컸다. 엄마는 출생신고를 꺼리고 생부의 출생 신고는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출생신고가 안 된 8살 아이가 엄마 손에 목숨을 잃었던 ‘인천 미추홀구 사건’이 여기에 해당된다.

연구는 이러한 출생 신고 제도의 문제점을 파악하는 것부터 시작하기로 했다. 출생 통보제가 시행됐을 때 혼란을 줄이기 위한 논의도 병행될 것으로 알려졌다. 해외 입법사례도 검토 대상에 올랐다. 행정처 관계자는 “인천 아동 사건으로 연구가 시작된 건 아니지만 해당 사건의 문제 해결을 위한 방안을 함께 다룰 것”이라고 설명했다.

대법원의 이번 조치는 유엔 아동권리위원회의 권고와도 연결된다. 아동권리위는 2년 전 한국 정부에 출생등록 개선안을 만들라고 권고했고, 정부는 2024년까지 이행안을 마련해 보고해야 한다. 아동권리위 관계자는 “아동은 결혼 상태를 포함한 부모의 지위에서 오는 모든 차별로부터 보호를 받을 권리가 있다”며 출생신고제도의 개선 필요성을 강조했다. 김 변호사는 “대법원이 아동권리에 대한 판례를 내놓은 것처럼 더 적극적인 실현 방안을 찾기 위해 연구를 진행하는 것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임주언 기자 eo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