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 고로쇠나무

입력 2021-02-22 04:05

해마다 우수, 경칩이면 고로쇠나무가 수난을 당한다. 수액이 몸에 좋다며 찾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고로쇠나무는 단풍나무과에 속하는 큰키나무이다. 줄기에 상처를 내면 수액이 멈추지 않고 계속 흘러내린다. 여느 나무에 비해 수액이 묽은 편이라 쉽게 굳지 않는 까닭이다. 그 때문에 해마다 봄눈이 녹을 때쯤이면 고로쇠 자생지에서는 줄기에 구멍을 뚫어 호스를 꽂아 수액을 모은다. 고로쇠나무 수액이 위장병에 좋고 신경통을 다스리며 당뇨병에 효과가 있다고 말한다. 심지어 다이어트 식품으로 소개하기도 한다. 하지만 위장병을 고치고 당뇨 수치를 낮추며 다이어트에 도움이 된다는 말을 그대로 믿기는 어렵다.

고로쇠나무의 수액과 관련해선 ‘동의보감’이나 ‘본초강목’ 어디에도 처방이 기재돼 있지 않다. 그런데 왜 고로쇠나무 수액이 약용으로 알려졌을까. 고로쇠를 한자로 골리수(骨利樹)라 한다고 했다. 우리말로 전음되면서 고로쇠가 됐다지만 문헌으로 고증된 용어는 아닌 듯하다. 산골 사람들은 얼음이 풀릴 때쯤 고로쇠 수액이 흐른다는 것을 알았을 게다. 그 물을 마신 후 기운이 솟는 듯한 느낌을 받았을 것이고 비타민 부족에서 오는 각기병 증세에 도움이 됐을 듯하다. 그로부터 고로쇠가 뼈에 이로운 약수라고 널리 알려졌으리라.

나무의 수액은 높이 20~30m까지 올라가 잎과 꽃을 피우는 영양소이다. 그런 수액을 줄기 아래쪽에서 구멍을 뚫어 뽑아내면 가지 끝이 마를 수밖에 없다. 갑자기 죽지 않으니 나무에 해가 없다고 생각하면 곤란하다. 캐나다에서는 사탕단풍나무 수액을 모아 정제해 메이플시럽을 생산한다. 우리도 앞으로는 더 많은 고로쇠나무를 심고, 꼭 필요한 사람을 위해서라도 휴식년제를 실시해야 한다. 해마다 수액을 뽑아낼 것이 아니라 나무가 건강하게 자랄 수 있도록 회복 기간을 줘야 한다. 이제는 이 땅의 생명자원을 우리가 아껴야 할 때이다. 국내산 고로쇠 수액으로 생산하는 설탕을 기대하며.

오병훈 수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