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짓 해명 사태로 사법부 신뢰를 훼손했다는 질타를 받아온 김명수(사진) 대법원장이 법원 내부망에 글을 올려 대국민 사과했다. 그러면서도 임성근 부산고법 부장판사의 사표를 반려하는 과정에 정치적 고려는 없었다고 했다. 법관들 틈에서는 여전히 불명확한 대목이 많고 모순적이라는 반응이 나왔다.
김 대법원장은 19일 법원 내부망 ‘코트넷’에 ‘국민과 법원 가족 여러분께 드리는 말씀’이라는 제목의 글을 올려 “저의 부주의한 답변으로 큰 실망과 걱정을 끼쳐드린 점에 대해 깊은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고 했다. 김 대법원장은 지난해 5월 임 부장판사와 면담했을 때 ‘국회 탄핵’을 거론하며 임 부장판사의 사표를 반려했었다. 면담 때 ‘탄핵’을 언급하지 않았다고 밝혔지만 임 부장판사가 녹취파일을 공개하며 거짓말이 드러났고, 삼권분립 훼손 비판마저 일었다.
김 대법원장은 “여러 지적을 무겁게 받아들인다”면서도 국회를 의식해 임 부장판사의 사표를 반려한 건 아니라고 강조했다. 그는 “법관의 사직 수리 의사 여부에 대한 결정은 관련 법 규정 등 여러 사정을 고려한 판단이었을 뿐 정치적인 고려가 있지 않았다”고 했다. 김 대법원장은 “제가 정치권의 교감이나 부적절한 정치적 고려를 해서 사법의 독립을 위태롭게 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도 했다.
김 대법원장이 사태 이후 국민과 사법부 구성원에게 공식적으로 송구하다는 입장을 밝힌 건 이번이 처음이다. 지난 4일 퇴근길에 취재진을 상대로 “임 부장판사와 실망을 드린 분들께 죄송하다”고 했지만, 법관들은 “사법부 구성원에게는 공식 입장을 밝혀야 한다”는 기류였다. 대법원 관계자는 “늦어지긴 했지만 숙고의 결과”라고 말했다.
대법원이 강조하는 김 대법원장의 입장 핵심은 ‘정치적 고려가 없었다’는 대목이다. 하지만 법관들 틈에서는 이를 그대로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반응이 다수였다. 김 대법원장의 녹음 등에 비춰볼 때 그가 먼저 탄핵을 언급한 이유는 여전히 명확하게 해명되지 못했다는 것이었다. 한 부장판사는 “(김 대법원장의 사과는) 유체이탈에 가깝다”고 말했다.
법 규정에 따라 임 부장판사의 사표를 수리하지 않았다는 해명은 모순이라는 지적도 나왔다. 법원행정처는 ‘법관의 의원면직 제한에 관한 예규’ 조항을 검토 중이며, 사표 불수리의 위법성 여부에 대해 아직도 명확한 판단을 내리지 못했기 때문이다. 조재연 법원행정처장은 지난 17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에 나와 “임 부장판사의 사표가 제한사항이 되는지 명확한 것 같지 않다는 게 내부 검토 결과였다”고 했었다.
법관들은 무엇보다도 김 대법원장이 ‘편향 인사’ 비판에 대해 아무런 언급을 하지 않은 점을 지적했다. 서울중앙지법에서는 청와대·여권이 주목하는 사건의 재판장들이 관행을 벗어나 유임했고, 법원장 보임 과정에서는 대법원이 고위 법관들에게 압력을 행사했다는 의혹도 제기된 상태다. 한 법관은 “입장을 이해하기 어렵고 의문이 많다”며 “취임 때처럼 언론과 일문일답이라도 해야 한다”고 말했다.
허경구 기자 nin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