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가운 분노 아니면 자포자기의 심정일까. 김명수 대법원장의 ‘거짓 해명 논란’을 겨냥해 최근 일부 현직 법관들이 법원 내부망 ‘코트넷’에 올린 비판글에는 아무런 댓글이 달리지 않았다. 의아한 침묵이다. 지난 16일 “사법부 신뢰회복을 위해 대법원장은 사퇴하라”고 강변한 법원 보안관리대 6급 공무원의 글에만 일부 직원들이 호응했을 뿐이다.
‘판사들이 사법부 앞날에 무관심하다’고 해석하는 건 명백한 오독이다. 썰렁한 코트넷과 달리 현직 판사들의 온라인 카페 ‘이판사판’에는 김 대법원장을 거세게 비판한 익명글이 여럿 올라왔다. 노골적으로 김 대법원장의 사퇴를 언급하거나 ‘사법농단 의혹’을 불러일으킨 양승태 전 대법원장과 다를 바 없다는 성토까지 있었다. 평소 말을 아끼던 판사들도 “대법원장이…”라고 운을 떼면 “이번 건 정말 아니다”며 격한 반응을 보인다.
그렇다면 겉으로 보이는 법관들의 무반응을 어찌 설명할까. “먼지가 가라앉길 기다리는 수밖에 없지 않으냐.” 한 지방법원 부장판사의 한탄이다. 그는 “‘사법농단’ 이후 법원 내부는 사분오열됐고, 서로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른다”며 “법관들의 의사표시에 정치적 해석이 난무할 것이 우려된다”고 했다. 홍역을 치렀던 과거가 일종의 ‘트라우마’로 남은 셈이다. “침묵이 대법원장 옹호를 의미하지는 않는다. 다들 참담함을 안고 일하고 있다”고 그는 속내를 내비쳤다.
보다 차가운 반응도 있다. 서울 지역의 한 부장판사는 “사퇴하면 더한 사람이 후임이 될 수도 있지 않겠느냐”고 냉소했다. 김 대법원장이 물러나더라도 나아질 기미는 안 보인다는 것이다. 여러 판사들 사이에서 공공연히 떠도는 얘기다. “도의적 책임은 져야겠는데 사퇴할 사안까지는 아니라는 분위기라서, 애매해서 오히려 문제다”라는 말도 흘러나온다.
김 대법원장은 지난 17일 국민의힘 의원들의 항의 방문 때 ‘사퇴는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배수의 진이다. 김 대법원장은 입장 표명의 시기와 내용을 고심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6년의 임기 중 2년7개월이 남았다. 이번 입장 표명에 대한 성적표는 남은 임기 동안의 사법개혁 동력을 좌우할 가능성이 크다.
재경지법의 한 부장판사는 “무엇을 어떻게 잘못했는지, 더 나아질 방도는 무엇인지 등의 구체적인 메시지를 내놔야 할 것”이라고 했다. 그는 “다만 우리 대법원장님은 눈치를 보고, 항상 때를 놓친다”며 씁쓸히 말했다. 김 대법원장이 판사들의 침묵을 무겁게 여기길 바라며 고언을 적는다.
구자창 기자 critic@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