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사과주스가 맛있다는 아이의 말을 듣고는 가끔이라도 장을 볼 때면 늘 장바구니에 사과주스를 담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그런 지도 꽤 됐으니 아이는 아마 사과주스 맛에 질린 지 한참 됐을 것이다. 그나마 내가 아는 아이 취향이 그것뿐이라 달리 뭘 살까 망설이다가, 요즘에는 애가 뭘 좋아하는지조차 모르며 살고 있다는 씁쓸한 생각과 함께 옛 기억들이 떠올랐다.
어렸을 때 친구로부터 초코바 하나를 선물 받았는데, 너무 맛있다며 궁상스레 아껴 먹는 것을 아버지가 보셨나보다. 며칠 뒤 아버지가 똑같은 초코바를 박스째 사 오신 게 아닌가. 그것도 작은 소포장 박스가 아니라 창고형 마트에서나 볼 법한 대형 박스를. 처음에야 신이 났지만 며칠 만에 나도 동생들도 금세 그 맛에 질리고 말았다. 또 언젠가는 동생들과 무슨 라면이 맛있다는 말을 했다가 그해 내내 그 라면만 먹어야 했던 기억도 떠올랐다. 앞으로 어른들 앞에선 뭐가 맛있다는 말을 하지 말아야지 하며 형제들과 다짐했던 철부지 대화까지.
당시 많은 부모들이 그러했듯 나의 부모도 매우 엄했으니 그런 불경한 말은 차마 직접 표현하진 못했다. 다만 물릴 때까지 먹이려드는 부모님을 참으로 이해할 수 없었다. 그저 동생들과 저 많은 것을 언제 다 먹나, 왜 우리 집은 뭐 하나 먹으면 질릴 때까지 먹이냐며 투덜거렸건만 이제 내가 부모가 되니 그 마음을 조금은 알 듯도 하다.
아무리 애가 커도 부모 눈에는 아직 어릴 뿐이다. 그럼에도 아이들과 함께하는 시간은 절대적으로 부족하고 서로 뭘 좋아하는지 편히 이야기 나누기도 쉽지 않다. 그러니 아이가 뭔가를 좋아했다면 그 정보를 업데이트할 시간과 여유도 없이 그 하나만이라도 먹이고 싶었던 것이리라. 철없는 음식 투정은 복에 겨운 것이었지만, 당신이 옆에 없는 시간에라도 아이들과 함께하길 바랐을 젊었던 부모님의 마음이 새삼 코끝을 찡하게 맴돈다.
배승민 의사·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