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사회는 고령화를 넘어 초고령 사회로 진입 중이다. 과거와 달리 힘없고 추레한 노인이 아닌, 건강하며 자기 계발에도 부지런한 ‘신(新)노인’이 늘었다. 질병에 노출되고 무기력해지며 죽음에 더욱 가까워지는 노년은 멀리하고픈 인생의 단계로 간주된다. 음울한 노년기의 족쇄에서 해방되길 바라며 노년을 잘 보내기 위한 각종 처방이 쏟아진다. 멋진 노년이란 뭘까. 고령화 시대에 교회가 노년을 위해 제공할 수 있는 건 무엇인가. 이 책에 의하면 노년은 신학적 해석을 요하는 인생의 정점이다. 노년은 봉사의 대상이 아니라 신앙공동체의 본질을 경험하고 구성원들을 성장시키는 중요한 원동력이다.
‘그리스도 안에서 나이 듦’이란 제목은 종교적 미사여구가 아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삶과 죽음, 부활 신앙은 노년에 대한 이해와 실천에 실천적 진실을 제공한다. 저자들은 그리스도 중심의 노년 이해를 성경과 교회사의 전통에서 접근한다. 이어 현대사회의 인본주의적 가치가 어떻게 노년을 손익 계산해야 할 인생 단계로 왜곡시켰는지를 분석한다. 끝으로 저자들은 신앙공동체가 우정과 환대, 소명과 예배, 안락사 등의 과제를 노년과 함께 공유할 것을 제안한다.
스탠리 하우어워스 같은 저명한 신학자들의 글을 접하는 것도 즐겁지만, 윤리 의학 문학 등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이 노년과 죽음의 기독교적 의미를 융합적·차별적으로 탐구한 것도 인상적이다. 내가 책에서 주목한 단어는 ‘의존’이다. 우리는 인간됨의 표지를 자율적이고 합리적이며 자아실현적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측면에서 노인은 인간됨의 기준에 들어맞지 않는 연약하고 의존적인 존재다. 하지만 신학적으로 볼 때 인간은 본래 의존적이다. 구원받은 인간은 하나님의 은혜와 섭리에 의존해 살아야 한다. 그리스도의 긍휼로 새롭게 된 신앙의 지체는 서로 돌보며 의존하는 관계 속에 있다. 노년을 위한 목회 사역에 가장 필요한 것은 이런 협력적 돌봄의 공동체다. 따라서 교회는 “노인과 세대를 뛰어넘는 우정으로 세워지는 기독교 공동체”여야 한다. 노년은 인생의 쇠퇴기가 아니라 그리스도 안에서 더욱 통합되고 미래지향적 삶으로 나아가는 소망의 시기다.
책은 노년을 바라보는 신학적 시각뿐 아니라 교회가 어떤 돌봄의 공동체여야 하는지에 관한 근본적 질문을 던진다. 자율성과 생산성의 신화 속에서 소외된 노년과 죽음이라는 주제가 역설적으로 하나님 앞에 인간의 연약함을 일깨우며, 산 자와 죽은 자가 소망으로 함께하는 교회를 위한 혁신적 방향을 제공한다. 노년을 신학적으로 다룬 이 책을 읽으며 은총과 돌봄 공동체로서 교회의 사명에 확신을 갖게 된 건 의외의 놀라운 소득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