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세먼지로 익숙해진 마스크는 코로나19 이후 필수가 됐다. 하나만 해도 숨이 턱 막히는데, 두 개가 겹쳐 들이치면 더욱 난감해진다. 멀리 갈 것도 없이 지난 설 연휴가 딱 그랬다. 바이러스를 피해 인적 드문 바깥에서 잠시 숨 돌리려 해도 뿌옇게 드리운 미세먼지는 그 좁은 공간마저 허용치 않았다.
그렇다면 미세먼지와 바이러스 걱정이 없었던 때 우리는 제대로 숨 쉬고 있었을까. 코로나19 팬데믹 가운데 지난해 5월 해외에서 먼저 출간된 책 ‘호흡의 기술’(원제: Breath-The New Science of a Lost Art)은 그 질문에 ‘아니오’라고 답하는 책이다. 작가이면서 저널리스트인 저자는 인류가 ‘잃어버린 호흡의 기술’을 재발견해야 하는 이유를 자신의 여정과 함께 설득력 있게 들려준다.
가장 코 막힌 동물, 인간
프롤로그를 지나 마주하는 첫째 장의 제목은 ‘동물의 왕국에서 최악의 호흡을 하는 존재’다. 물론 그 주인공은 인간이다. 책에 나오는 수치는 인간이 왜 최악의 호흡을 하는 존재인지 드러낸다. 미국 기준으로 인구의 40%가 만성 코막힘으로 고생하고, 어린이의 90%는 입과 코가 어느 정도 기형이다. 또 성인의 45%가 가끔 코를 골고, 4분의 1 정도는 항상 코를 곤다. 30세 이상 성인의 25%가 수면무호흡 때문에 숨이 막히는 등 인구의 대다수가 어떤 형태로든 호흡 곤란이나 호흡 저항의 고통을 겪는다.
스트레스, 알레르기, 환경오염, 약물 등이 원인으로 꼽히지만 인류의 진화로 인한 얼굴 형태 변화가 근본 원인으로 제시된다. 농경을 시작한 인류는 부드럽고 칼로리가 풍부한 음식을 더 많이 섭취해 뇌가 커졌다. 그로 인해 코결굴(콧구멍에 인접한 뼛속 공간·부비동) 등의 공간이 줄고, 기도는 좁아졌다. 의사소통을 위한 입말의 발달은 후두를 내려앉게 해 성량과 발성 범위가 확대된 반면 목을 막았다.
역설적이게도 인류의 발달이 호흡에는 악재로 작용한 셈이다. “기묘하고 슬프게도 우리 조상들이 다른 동물들보다 더 영리하고 솜씨 좋고 오래 살 수 있도록 적응한 결과, 곧 불을 잘 다루고 음식을 가공하고 뇌가 발달하고 광범위한 소리 신호로 의사소통을 할 수 있게 된 것 때문에 입과 목에는 장애가 생기고 호흡을 하기가 훨씬 더 힘들어졌다.” 특히 약 300년 전 자연산 먹거리의 급속한 산업화로 상황은 더욱 나빠졌다. 고대 조상들이 하루 몇 시간씩 씹어 입, 치아, 목, 얼굴을 넓고 강하게 성장시킨 데 비해 300년 전부터 한결 부드러워진 음식을 씹어 삼킨 인류는 움츠러든 얼굴과 작은 입을 갖게 됐다. 세대를 거치면서 달라진 얼굴은 인류를 답답하게 만들었다.
입은 닫고 코는 열고
저자는 이같은 악조건에서 적절한 ‘호흡의 기술’을 찾기 위해 스스로 실험 대상이 되는 것도 마다하지 않는다. 대표적으로 코로 숨 쉬는 것의 중요성을 확인하기 위해 코와 입으로만 각각 10일씩 숨 쉬는 실험에 참가한다. 결과는 즉각 나타났다. 입으로만 숨 쉰 첫 날 밤 저자의 코골이는 13배 증가했고, 마지막 날 밤에는 48.2배 늘었다. 수면 무호흡증을 처음 앓기도 한다. 혈압도 높아져 실험 중반 혈압은 실험 전보다 평균 13이나 올라갔다. 반면 코 호흡을 시작하면서 수치는 개선된다.
저자는 코 호흡이 공기를 걸러 데우고, 촉촉하게 해주는 익숙한 장점 외에 더 많은 기능을 한다고 설명한다. 코결굴이 산화질소를 크게 증가시키는 것도 코 호흡의 커다란 이점이다. 산화질소는 혈액순환을 왕성하게 하고, 세포에 산소를 전달하는 데 필수적인 구실을 하는데 면역 기능, 체중, 혈액순환, 기분, 성 기능 등이 산화질소의 영향을 크게 받을 수 있다. 코 호흡만으로도 산화질소를 6배 증가시킬 수 있는데, 이는 입 호흡보다 18% 정도 더 많은 산소를 흡수할 수 있게 한다.
책에서 소개하는 아메리칸 원주민에 대한 기록은 코 호흡의 중요성을 더욱 부각시킨다. 19세기 연구자 조지 캐틀린은 50개 원주민 부족의 삶을 기록한 글에서 이들이 “피아노 건반처럼 고른” 치아를 갖고, 강건한 신체를 가진 비밀은 코 호흡이었다고 적었다. 입을 억지로 다물고 잠드는 등 코 호흡을 실천한 캐틀린도 당시 평균 수명의 2배인 76세까지 살았다. 장수 비결로 코 호흡을 든 건 당연했다.
호흡에도 다이어트가 필요하다
우연히 참석한 호흡법 강좌에서 호흡의 중요성을 깨달은 저자는 호흡이 “잃어버린 건강의 한 기둥”이라고 표현한다. 매일 폐를 통과하는 13.6㎏의 공기와 세포가 소비하는 0.77㎏의 산소가 식단이나 운동 못지않게 중요하다는 설명도 설득력을 높인다. 건강의 한 기둥을 회복하기 위해 저자는 ‘호흡의 힘’을 깨달았던 이들을 재발견한다. 일종의 돌팔이 의사였던 과학계와 의학계 이단아들의 흔적을 찾아 되짚는 것이다. 이들은 남북전쟁 당시 외과의사, 프랑스의 미용사, 오페라 가수, 인도의 신비주의자, 심장병 전문의, 합창단 지휘자 등이었다. 이단아들의 죽음과 함께 사장된 기술은 최근 몇 년 사이 재발견되어 과학적으로 시험되고 증명되기 시작했는데, 저자는 이러한 성과를 전한다.
잃어버린 기술은 ‘느리게, 더 적게 호흡하라’로 요약할 수 있는 당장 실천 가능한 호흡법부터 티베트 혹한 속에서도 호흡법만으로 몸을 데우는 ‘믿거나 말거나’류의 심화 단계까지 다양하게 이뤄져 있다. 그 중 과식에 비해 덜 주목 받는 과호흡 문제를 짚어보자. 많이 호흡할 경우 산소는 그만큼 흡수되지 않는 반면 이산화탄소는 더 많이 배출된다. 문제는 이산화탄소가 어떤 비타민 못지않게 몸에 꼭 필요하다는 점이다. “이산화탄소는 일종의 이혼 변호사 기능을 한다. 산소를 짝꿍에게서 분리시켜 자유롭게 다른 짝꿍을 만날 수 있도록 뚜쟁이 역할을 하는 것이다.” 불교, 자이나교, 기독교 등 세계 모든 문화의 종교가 분당 5.5~6회로 동일한 호흡 패턴의 동일한 기도 방법을 발전시켜온 것도 이와 연결 지을 수 있다.
후반부에는 호흡을 통해 특별한 능력이나 치유를 가능케 하는 특별한 호흡법도 소개하는데, 보기에 따라 유사과학으로 비칠 수도 있을 것 같다. 네이처에 발표된 하버드 의대 실험 결과 등 과학의 받침대로 균형을 잡긴 했지만 선뜻 받아들이기엔 아직 이른 감이 없지 않다.
책은 ‘호흡의 기술’을 찾기 위한 저자의 자학적 실험, 출입이 금지된 지하 납골당 잠입 같은 서사에 중간 중간 선지자들의 업적과 과학적 내용을 솜씨 좋게 끼워 넣는다. 복잡한 내용을 비유 등을 통해 알기 쉽게 풀어내는 미덕도 갖췄다. 번역도 매끄럽다. 호흡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도 “숨쉬기가 여느 치료법이나 약물과 마찬가지로 만능이 아니라는 사실”도 빠트리지 않는다. 책장을 덮고 나면 어느 순간 호흡에 신경 쓰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김현길 기자 hg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