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가 있는 휴일] 낡은 컬러사진

입력 2021-02-18 19:29

우리 엄마
수국색 포플린 치마 입고
수국색 양산 아래 웃고 있네
수국색 바람이 치마 주름에 볼 비비네

지난밤이었네
은하수 속을 스쳐가던 행성 하나
엄마!라고 부르는 소릴 들었지
부드럽게 펄럭이는 수국색 치마주름에 대고
나도 엄마!라고 불러보네

잠이 들어
엄마가 사는 세상에 찾아가면
엄마의 사진 한장
엄마가 아침에 일어나 기도하는
창가에 놓아둘 것이네

엄마 내가 왔어요!
라고 말하는 소리 듣지 못하고
엄마는 가만히 사진을 바라보다가
가슴에 꼬옥 껴안겠지요

곽재구 시집 ‘꽃으로 엮은 방패’ 중

낡은 컬러사진 속 엄마의 수국색 치마는 색이 많이 바래져있을 것 같다. 사진 속 펄럭이는 치마주름에 대고 엄마를 불러보지만 시인은 꿈속에서도 엄마를 만날 수 없다. 말하는 소리도 전할 수 없는 시인의 그리움이 절절하다. 1981년 등단한 시인이 등단 40년을 맞는 해에 9번째 시집을 펴냈다. 시집엔 해설 대신 시인이 한글 자모(ㄱ~ㅎ, ㅏ~ㅣ) 순서대로 쓴 산문이 실려 있다. 시인의 대표작인 ‘사평역에서’가 어떻게 신춘문예를 통해 세상에 나오게 됐는지에 관한 이야기도 확인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