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12월 어느 날 밤 한 대학생이 극단적인 선택을 하기 위해 서울 마포대교에 다다랐다. 대학생은 사흘 전 학교 페이스북 페이지 대나무숲에 ‘마포대교로 간다’는 글을 올렸다. 강을 바라보는데 한 여성이 급하게 달려와 그에게 물었다. “대나무숲에서 봤는데, 혹시 그분이 맞나요?”
같은 학교에 재학 중인 그 여학생은 핫팩을 건네며 “늦지 않아 다행이에요”라고 말했다. 그 말에 “무슨 상관이고 뭐가 다행이에요. 우리는 철저히 남인데”라고 쏘아붙였던 그는 여학생의 다음 말에 울음을 터뜨릴 수밖에 없었다. “어제까지는 남이었지만 지금은 아니잖아요.” 여학생은 대학생이 글을 올린 사흘 전에도 다리를 찾았다고 했다.
‘마침 그 위로가 필요했어요’는 추운 겨울 밤 건넨 핫팩처럼 작지만 잊을 수 없는 온기를 품은 이야기를 한가득 담은 책이다. 평소 뉴스에 오르내릴 일 없는 평범한 이웃들이 일상에서 펼쳐낸 따뜻한 사연들이 60편 넘게 실려 있다. 2017년부터 국민일보 ‘아직 살 만한 세상’ 코너에 연재된 이야기들을 모아 책으로 묶었다.
책에 소개된 이들이 특별할 것 없는 일상에 온기를 불어넣은 출발점은 관심과 배려였다. 파라솔, 바람벽, 의자, 전광판도 없던 마을버스 정류장 뒤에서 핫도그 가게를 하던 주인은 더운 날씨에 기다리는 노인들에게 가게 문을 열었다. ‘핫도그 안 사 드셔도 됩니다. 시원하게 에어컨 틀어놓을게요’라고 안내문을 붙이고, 버스 배차 간격도 추가로 알렸다. 폐지가 잔뜩 실린 리어카를 할아버지 대신 끈 청년은 거기서 그치지 않고, 할아버지에게 10만원을 건넸다. ‘아이들 분윳값이라도 벌려고 새벽마다 나온다’는 할아버지의 말이 마음에 걸렸던 것이다. 그 10만원은 고되다는 택배 상하차 아르바이트를 한 청년의 일당이었다.
버찌씨를 받고 아이에게 사탕을 건넨 동화 ‘이해의 선물’을 떠올리게 하는 사연도 있다. 주말 야간 편의점 아르바이트로 ‘투잡’을 뛰던 회사원은 아동급식 카드로 도시락 하나만 사가던 남매를 위해 ‘작전’을 세운다. 컵라면이나 도시락 등을 미리 결제해놓고 사은품이라고 건넨 것이다. 계획한 두 달의 아르바이트를 마치던 날에는 한 달 월급을 남매 중 누나의 손에 쥐어주기도 했다. 엄마에게 속옷을 선물하고 싶다는 여자아이에게 “마침, 4500원짜리 속옷 세트가 남아있네”라며 2만8000원짜리 제품을 건넨 속옷가게 주인도 있었다.
책은 어디를 펼쳐도 뭉근한 감동을 주는 이야기를 쉬이 마주할 수 있다. 때로는 입꼬리가 올라가고, 때로는 눈시울이 뜨거워지는 이웃들의 사연에 ‘아직 살 만한 세상’이란 안도감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김현길 기자 hg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