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본문은 한국교회에서 중요하게 강조하는 말씀입니다. 모르는 분이 없을 정도로 유명한 2절은 “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됨 같이 네가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입니다. 영혼과 범사와 강건까지 잘된다 하니, 형편에 맞게 적용하며 영육이 다 복을 받는 것으로 설교하고 이해도 해왔습니다.
그러나 그다음 구절에 대해선 한국교회가 간과해 온 게 사실입니다. 3~4절은 “형제들이 와서 네게 있는 진리를 증언하되 네가 진리 안에서 행한다 하니 내가 심히 기뻐하노라. 내가 내 자녀들이 진리 안에서 행한다 함을 듣는 것보다 더 기쁜 일이 없도다”입니다. 여기서 진리는 지식이 아닙니다. 지식은 머리에 담아두는 것이지만, 진리는 삶을 통해 구현돼야 합니다. 범사에 잘되길 간구하는 것만큼이나 진리를 행하는 일에 소홀하지 말아야 한다는 점도 강조해야 합니다.
옛날 중국에 그림을 좋아하는 임금님이 살았습니다. 나라에 방을 붙여 ‘그림 그린다는 사람은 다 모이시오’하고 명을 내려 화가들이 총출동했습니다. 임금께선 화가들에게 상을 내걸고 그림을 한 폭씩 정성껏 그려내게 했는데, 눈이 하얗게 온 세상을 덮은 작품이 대상을 차지했습니다. 임금은 그 화가를 궁궐로 초청해 큰 그림을 펼치고 화가와 함께 그림을 감상했습니다. 가까이서도 보고 멀리서도 바라보다가 문득 화가에게 질문합니다. “이보시게. 당신 그림이 대단하오. 그런데 저 구석 눈 위에 발자국이 몇 개 찍혔는데, 누가 발자국 남겼는지, 발자국 주인은 어떻게 된 것이오.” 그러자 화가는 “임금님, 잠시 기다려 주십시오”하고는 이내 사라져 버립니다. 한참을 두리번거리니 그림 속 발자국 위에 화가가 들어가 걷고 있는 것이 보였습니다. 화가가 그림 밖이 아니라 그림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러자 평면이던 그림이 움직이면서 약동하고 살아있게 되었다는 이야기입니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이 세상은 하나님이 그린 그림입니다. 하나님 창조의 능력이 나타나서 보시기 심히 좋도록 창조된 그림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림 밖에서만 바라보는 분이 아니었습니다. 사람의 옷으로 갈아입고 이 세상 속에 당신의 발자국을 남깁니다. 이 발자국이 갈릴리와 유대와 여러 마을로 이어져 나중에는 십자가와 이후 부활로 이어집니다. 주님의 발자국은 지금도 이 세상에서 고통당하고 외롭고 눈물 흘리는 사람들에게 닿고 있습니다. 그림 속 세상이 살만한 곳이 되고 위로와 기쁨이 있는 이유는 주님이 세상 안에서 함께 걷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의 뒤를 따르는 제자들의 사명은 그림만 많이 그려내는 것이 아닙니다. 자기가 그린 그림으로 들어가 걸으면서 살아있는 그림이 되게 만드는 게 사명입니다.
좋은 설교가 무엇일까 생각하게 됩니다. 한 폭의 그림을 그려내는 화가처럼 목사가 설교했을 때 그 설교가 죽은 설교가 아니고 살아있는 설교가 되려면, 화가가 그림으로 들어가듯 목회자도 설교 속으로 들어가 삶 속에서 행함으로 발자국을 남겨야겠다고 생각합니다. 진리를 알고만 있는 게 아니라 진리 안에서 행하는 것, 오늘 말씀 후반부에 나오는 부분을 한국교회가 되돌아봤으면 합니다. 앞으로 진리를 행하는 성도들이 이 땅에 많이 나타나, 우리 사회 여러 분야에서 살아 움직이는 그림들이 보이길 소망합니다.
김운성 목사(영락교회)
◇영락교회는 1945년 한경직 목사님을 중심으로 세워진 이후 경건한 복음주의 신앙의 육성, 성서적 생활윤리의 훈련, 교회연합 정신의 구현, 세상에서 하나님 공의의 실현을 위해 노력해 왔습니다. 김운성 목사는 연세대와 장로회신학대 신학대학원을 졸업하고 부산 땅끝교회를 거쳐 2018년부터 영락교회를 이끌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