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율주행 시대 코앞인데… ‘고령’ 택시운전사를 어찌하나

입력 2021-02-20 04:05

코로나19로 인한 일자리 감소와 경기 악화로 개인택시 운전대를 잡으려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외환위기 등 과거 불황기에도 일자리를 잃은 사람들이 개인택시와 같은 운수업종으로 몰린 것을 고려하면 새삼스럽지 않은 현상이지만 이런 상황을 맞는 정부의 고민은 깊어지고 있다.

장기적 관점에서 모빌리티산업 혁신과 자율주행 시대 대응을 위해서는 서서히 택시 면허 총량을 줄이는 감차(減車)가 불가피한데 당장 발등이 뜨거운 상황이다. 고령자가 많은 택시업계에 청장년층 진입 기회를 확대하려 하지만 기존 고령 택시기사의 면허 반납이 저조하다는 점도 골칫거리다.

개인택시 면허 교육에 인파 몰려

지난해 말 개인택시 면허를 따기 위한 한국교통안전공단의 교통안전교육 수강신청 과정에서 일부 신청 희망자들이 불만을 제기했다. 수강신청 창이 열리자마자 약 3000명인 정원을 웃도는 수강 희망자가 몰리면서 인터넷 접속이 끊기며 신청을 못 한 사람들이 속출했기 때문이다.

이에 국토교통부는 지난달 황급히 교통안전교육 인원을 현행보다 3배 이상 확대한 1만50명으로 확대하겠다고 밝혔다. 교통안전교육 수강 인파가 몰린 것은 정부가 택시산업의 세대교체를 유도하기 위해 개인택시 진입 장벽을 대폭 낮춘 영향이 크다.

과거에는 개인택시 면허를 받으려면 법인택시나 사업용 화물차 등 사업용 자동차 운전경력 5년 이상에 무사고 경력까지 필요했지만 올해부터는 사업용 자동차 운전경력이 없어도 5년 무사고 경력만 있으면 교통안전공단의 교통안전교육만 받고 면허를 받을 수 있다.

그러나 제도 변경 탓으로만 보기는 어렵다. 코로나19발 경기 악화로 일자리가 줄어든 것도 원인이라는 해석이다. 국토부 관계자는 19일 “운수업은 특별한 기술이 없어도 운전면허만 있으면 할 수 있다는 인식 때문에 과거에도 불황기에 인파가 몰렸다”고 설명했다.

실제 외환위기 직후인 1998년 1월에도 서울지역의 1종 운전면허 응시인원이 3만4906명으로 1년 전(1만4993명)보다 배 이상 늘었다. 당시 택시 등 사업용 자동차를 운전하려면 1종 운전면허를 취득해야 했다. 글로벌 금융위기 때 역시 비슷했다. 통계청에 따르면 택시 운송업 종사자는 2007년 30만205명에서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인 2008~2009년 각각 30만5102명, 30만7031명으로 증가했다.

택시 면허 증가… 자율주행 ‘뇌관 ’

문제는 불황기에 정부가 늘려준 택시 면허가 장래에는 택시산업을 포함한 모빌리티 산업 혁신에 걸림돌로 작용한다는 점이다. 서울의 인구 1000명당 택시 대수는 7대로, 뉴욕(1.7대) 런던(2.1대) 도쿄(5대) 등보다 훨씬 많다. 그러나 많은 사람이 “정작 필요할 때 택시가 없다”고 하소연한다. 잦은 승차 거부나 불친절 등 택시에 대한 소비자 불만도 많지만 유독 이를 대체할 모빌리티 서비스는 쉽게 자리잡지 못한다. 우버 등 다양한 플랫폼이 나오는 외국과는 딴판이다. 이와 관련해서 한 업계 관계자는 “택시업계의 견제 등이 심한 한국에서는 혁신적인 모빌리티 서비스가 자리잡기 어렵다”고 말했다.

택시 업계에서 고령 운전자가 많다는 점도 문제로 지적된다. 이는 교통안전 문제와도 직결된다. 택시기사의 평균 연령은 지난해 기준 61.4세로 다른 직역에 비교해 월등히 높다. 개인택시로 범위를 좁히면 기사들의 평균 연령은 지난해 기준 62.8세다. 2016년만 해도 59세였던 점을 고려하면 고령화 추세가 계속되고 있다.

정부는 이에 고령 기사들에게 면허를 사들여 반납받는 형식으로 감차를 추진해 왔다. 국토부에 따르면 최근 5년간 전국 17개 광역단체의 개인택시·법인택시 4049대가 면허를 반납했다. 원활한 수급 조절과 고령 택시 감축을 위해서는 보다 속도를 내야 하지만 면허 가격이 일종의 연금 성격이다 보니 가격은 좀처럼 내려가지 않고 반납도 저조한 실정이다.

국토부는 2019년 발표한 택시 제도 개편방안을 통해 75세 개인택시에 대해서는 감차 대금을 연금 형태로 지급하는 방안을 발표했다. 재원은 모빌리티 플랫폼 사업자들이 내는 기여금을 통해 마련한다는 구상이었다. 하지만 기여금을 관리하는 관리기구가 출범하지 않다 보니 연금식 지급은 아직 시행되지 않고 있다.

문제는 이르면 2020년대 후반쯤 자율주행 시대가 현실화될 수 있다는 점이다. 자율주행이 상용화되면 택시기사 역시 일자리를 위협받을 수밖에 없다. 이들에 대한 사회안전망이 마련되지 않은 상태에서 기술 발전은 2019년 ‘타다 사태’ 때 택시기사 분신 사건 등과 같은 큰 마찰을 초래하게 된다. 정부 관계자도 “자율주행 기술이 발달하면 운수업 종사자들의 생계 문제가 사회적 문제로 부상할 것”이라며 “이 문제가 정말 큰 폭탄이 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유정훈 아주대 교통시스템공학과 교수는 “자율주행이 현실화할 때를 대비해 정부가 운수업 종사자들의 장래 일자리를 마련하는 방안을 고민해야 한다. 고령 일자리 창출도 계속해서 병행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세종=이종선 기자 remember@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