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 마음은 신체 어디에 있나요

입력 2021-02-17 04:06

오래전 일이다. 지방의 어느 아담한 책방에서 강연을 마치고 숙소로 돌아가려는데 강연 주최자가 함께 저녁을 먹자고 제안했다. 행사의 사회를 직접 맡아주신 고마운 분이기도 해 흔쾌히 제안을 받아들였다. 닭구이가 유명한 가게에서 닭이 구워지기만을 기다리며 주최자의 질문에 대답하고 있었다. 그러다 내 입을 마비시킨 질문이 하나 있었다. 바로 사람의 ‘마음’이 신체 어느 부위에 있다고 생각하냐는 질문이었다. 뇌에 있는 건지 가슴에 있는 건지 도통 모르겠다며 내 생각을 들어보고 싶다고 했다. 가만히 생각해보았다.

아무래도 마음이 아프기 시작하면 주로 가슴에서 통증이 느껴지니까 가슴에 있지 않겠냐고 대답했다. 그러다 이내 뇌에 있는 것 같다고 대답을 바꿔치기했다. 의사도 대답하기 힘든 질문이지 않겠냐고 서로 입을 맞추며 다른 주제로 화제를 돌렸다. 그날 이후로 종종 신체를 들여다보며 마음이 어디에 있을지 생각해보는 날이 많았다. 아울러 주변 사람들에게 물어보는 날도 많았다. 유레카를 외칠 정도의 대답을 해주는 사람은 어디에도 없었다.

질문하는 것조차 지칠 때쯤이었다. 드디어 정답이라 불러도 될 만한 대답을 얻고야 말았다. 대답은 이러했다. 사람은 타고나기를 마음이 없이 태어난다. 신체 그 어디에도 마음은 없다. 애초에 마음이 없게 태어나지만 때때로 외부에서 마음을 얻어 신체에 장착하게 되는 것이다. 슬프거나 기쁜 마음은 전부 허공이나 사물에 묻어 있던 것으로 잠시 사람에게 옮겨붙는다. 그렇게 잠시 장착된 마음은 평생 붙어 있지 못하고 금방 사라진다. 가히 정답이라고 불러도 손색없는 대답을 해준 사람에게 선물을 보냈다. 이제 내 속은 후련하다. 그렇다. 애초에 우리는 마음 없이 태어난다. 마음은 새와 바람보다도 자유로워서 한 사람에게 오래 붙어 있지 않는다. 오늘 잠시 슬프거나 화나는 마음이 들지라도 금방 사라질 마음인 것이다. 마음에 마음 쓰지 않아도 되는 것이다.

이원하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