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메랑된 ‘학폭’ 선수인생 ‘폭망’

입력 2021-02-16 04:03 수정 2021-02-16 04:03

여자프로배구 흥국생명의 이재영·이다영(이상 25)이 학교 폭력(학폭) 논란으로 국가대표팀 경기·V-리그에서 동시에 무기한 출장 정지를 당했다. 국가대표팀의 중추이자 포지션별 V-리그 최고 선수로 손꼽혔던 쌍둥이 자매는 올 시즌 잔여 리그 경기와 올림픽 본선 출장이 좌절됐을 뿐더러 장기적으론 국가대표팀 지도자로 활동할 수 있는 기회도 박탈당했다.

대한배구협회는 15일 입장문을 통해 “학교폭력 가해자는 국가대표 선발 및 운영규정에 의거해 2021 발리볼네이션스리그, 2020 도쿄올림픽 등 향후 모든 국제대회의 국가대표 선수선발에서 제외한다”며 “앞으로 철저한 검증을 통해 올림픽 정신을 준수해 페어플레이 정신으로 임할 수 있는 지도자와 선수만을 국가대표팀에 선발하겠다”고 밝혔다.

배구협회가 강력한 조치를 취한 건 최근 배구계 전반으로 비화된 학폭 문제의 유사 사건 재발을 막기 위해서다. ‘사회적 물의가 있는 선수·임원은 국가대표 선발에서 배제한다’는 배구협회 규정을 철저히 적용하는 선례를 세우겠단 것이다. 이에 따라 이재영·이다영은 앞으로 국가대표 선수는 물론이고 지도자로도 활동할 수 있는 길이 막혔다. 배구협회 관계자에 따르면 스테파노 라바리니(이탈리아) 여자대표팀 감독도 현재 학폭 논란과 선수 징계 사실에 대해 모두 전달 받은 상태라, 도쿄올림픽에선 두 선수를 제외한 선수 구성이 강구될 전망이다.

배구협회는 두 선수 모친인 전 배구 국가대표 세터 김경희씨에 지난해 수여한 ‘장한 어버이상’을 취소하는 조치도 추가로 취하기로 했다. 김씨는 지난해 2월 쌍둥이 딸을 한국 최고의 선수로 길러낸 공로로 이 상을 받았다. 하지만 학폭 과정에서 김씨가 부적절하게 팀 전술에 개입하고 두 딸만을 위한 전술을 펼치도록 영향력을 행사했단 의혹이 제기되자 상을 취소한단 결정을 내렸다.

배구협회 징계에 앞서 흥국생명도 두 선수의 프로배구 경기 무기한 출전 정지를 결정했다. 흥국생명은 두 선수가 과거 저지른 학폭 행위에 대해 피해자들에 충분히 사죄하고 용서를 받는다는 전제조건이 성립된 뒤에야 출전을 논의할 수 있단 입장이다.

이에 따라 이재영·이다영은 프로배구선수로서 모든 지위를 상실했다. 우선 두 선수는 현재 팀 숙소에서 나와 자택에서 자숙하고 있다. 앞으로도 팀 훈련에 참여할 수 없어 기량을 유지하기 힘들다. 게다가 한국배구연맹(KOVO) 표준계약서에 따르면 선수는 ‘고의 또는 중과실’로 인해 계약기간 내 30일 이상 선수활동이 불가능하게 된 경우 해당 기간 동안 구단으로부터 보수를 수령할 수 없다. 운동도, 직업 활동도 모두 할 수 없게 된 것이다.

이재영·이다영, 또 다른 학폭 가해자로 지목돼 역시 잔여 리그 경기 불출전·국가대표 선발 제외가 결정된 남자프로배구 OK금융그룹의 송명근(28), 심경섭(30)만의 문제는 아니다. 전날 온라인 포털 게시판엔 “머리 박고 코트를 돌게 했다”며 또 다른 배구계 학폭 문제를 폭로한 익명의 글이 추가로 올라온 상태다. 이에 학폭을 뿌리뽑기 위한 전반적인 대책이 필요하단 지적이 많다.

KOVO는 학폭 문제 근절과 예방 방안을 논의하기 위해 16일 비상대책회의를 소집할 계획이다. 이 자리엔 KOVO 사무총장과 자문 변호사 뿐 아니라 배구협회 실무 관계자들도 참석해 규정 개정과 대책 마련 등을 논의한다.

이동환 기자 hua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