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타로 터지는 배구 ‘학폭’… 구단, 징계 수위 고심

입력 2021-02-15 04:02
프로배구 선수들의 학교 폭력(학폭) 논란이 걷잡을 수 없이 확대되고 있다. 선수들에 대한 실효성 있는 징계를 요구하는 여론에 더해 추가 폭로도 꼬리를 물면서 배구계는 당혹스러운 분위기다. OK금융그룹은 송명근(28)·심경섭(30)의 시즌 잔여경기 불출전 의사를 받아들였고, 흥국생명은 이재영·이다영(이상 25)의 징계를 최대한 빨리 발표할 계획이다.

흥국생명 이재영이 지난달 26일 인천 계양체육관에서 열린 GS칼텍스와의 프로배구 V-리그 4라운드 홈 경기에서 공격을 시도하고 있다(왼쪽). 이재영의 쌍둥이 동생인 이다영이 지난달 20일 대전 충무체육관에서 열린 KGC인삼공사와의 4라운드 원정 경기에서 머리에 통증을 느낀 후 인상을 찌푸린 모습. 한국배구연맹 제공

지난 13일 한 포털사이트 게시판엔 “초등학교 6학년 시절부터 이재영·이다영 자매의 폭행 피해를 입었다”는 내용의 추가 폭로 글이 올라왔다. 글을 작성한 A씨는 “그 둘은 틈만 나면 욕하고 툭툭 쳤고, 마음대로 할 수 없을 땐 부모님께 말해 (다른 선수들이) 단체로 혼나게 했다”며 “함께 생활할 수 없어 1년 반 만에 옆 산을 통해서 도망가기까지 했다”고 밝혔다.

두 자매의 학폭 논란은 지난 10일 B씨 등 4명이 공론화했다. 둘은 폭력 사실을 인정한 뒤 자필 사과문을 발표했지만 논란은 가라앉지 않았다. A씨는 ‘차분히 징계를 검토하겠다’는 흥국생명의 입장을 인용하며 “조용히 잠잠해지는 걸 기다리는 거라면 당시 일이 계속 폭로될 것”이라며 “전 재산을 다 줘도 피해자들의 상처는 하나도 없어지지 않는다”고 했다. 해당 게시물 댓글에선 근영여중뿐 아니라 선명여고에서의 학폭 의혹도 제기됐다.


남자부 상황도 마찬가지다. 송명근·심경섭의 폭행으로 고등학교 시절 고환 봉합수술까지 받아야 했다고 13일 폭로한 피해자 C씨는 같은날 OK금융그룹이 발표한 사과문을 지적하는 내용을 폭로 글에 추가했다. C씨는 “사과문엔 본인들도 어쩔 수 없었다는 변명이 섞여 있었다”며 진심어린 사과를 재차 요구했다.

배구계는 전례가 없는 이번 사태 수습에 고심하고 있다. 프로야구에선 넥센 히어로즈(현 키움)에 2018년 지명된 신인 안우진에 대한 학폭 폭로가 이어지자 구단이 정규시즌 50경기 출장 정지 징계를 내렸다. 대한야구소프트볼협회도 3년 자격정지 처분을 내려 사실상 국가대표로 뛸 수 없게 했다. 이번이 첫 사례인 배구는 각 주체들 간 대응 방식이 엇갈리고 피해자들이 원하는 수위의 ‘빠른 징계’도 이어지지 않아 비판이 커졌다.

OK금융그룹은 14일 송명근과 심경섭의 의사를 수용해 시즌 남은 경기에 출전시키지 않기로 했다. 송명근은 이날 자신의 소셜미디어에 “저는 학교폭력 가해자이고, 결코 용서받을 수 없는 행위를 저지른 게 맞다”며 “자숙하는 의미로 내일 이후 경기에 출전하지 않는 게 최소한의 도리”라고 밝혔다. OK금융그룹 관계자는 “사안의 심각성을 고려해 과거 잘못을 책임지고 반성하겠단 선수들의 의사를 수용키로 했다”며 “피해자들에게 사과하고 이 문제에 대해 어느 정도 합의를 한 후에야 복귀할 수 있다는 게 선수들의 뜻”이라고 말했다.

흥국생명은 학폭 문제의 엄중함과 여론의 요구를 고려해 연휴 내내 선수들에 대한 구체적인 징계 수위를 논의하고 있다. 흥국생명 관계자는 “최대한 빠른 시간 내에 선수 징계를 발표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V-리그를 운영하는 한국배구연맹(KOVO)과 국가대표팀을 담당하는 대한배구협회는 구단 조치가 먼저라는 입장이다. 협회 관계자는 “도쿄올림픽도 염두에 둬야 해 저희도 난감한 상태”라며 “회장님을 비롯해 협회 수뇌부들이 신중하게 여론을 경청하고 구단과 KOVO의 조치를 지켜본 뒤 대응할 것”이라고 했다.

이동환 기자 hua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