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시 내 친구들은 대부분 맨발이나 고무신을 신고 학교에 다녔지만 전교에서 나 혼자 구두를 신고 다닐 정도로 부유한 가정에서 살았다. 그러다 아버지가 믿었던 사람에게 배신을 당해 사업장과 많은 토지까지 한 순간에 잃고 화병으로 자리에 누웠다. 당장 끼니를 걱정할 상황이 되자 초등학교 5학년이었던 나는 버스 정류장에서 신문을 팔았다. 힘든 상황에서도 악착같이 노력해 인정받는 기술자가 됐고, 최고의 대우를 받는 직장에 들어가 회사의 세 번째 서열까지 올랐다. 군 제대 후 결혼하고 2남 2녀를 둔 원만한 가정을 꾸렸다.
그런데 회사 중책으로 술 접대 등으로 인해 가정에 소홀해지며 아내와의 다툼이 잦아졌다. 신경이 예민한 아내는 매일 밤 가위에 눌려 잠을 못 자고 제대로 먹지도 못하며 점점 말라갔다. 병원에서도 병명을 찾지 못했고 주위에서는 더 이상 살 가망이 없다는 말까지 했다. 아내만 건강해진다면 무엇이든 하리란 생각에 결혼 패물까지 팔아 한약을 지어 먹였지만 모두가 헛수고였다. 그렇게 힘들 때 ‘예수 믿어야 살아!’ 하던 아는 전도사님을 초대해 예배를 드렸다. 뜨거운 성령 체험을 한 아내는 곧 평안을 찾았다. 그 일로 하나님이 살아계신다는 확신으로 함께 교회에 나갔고, 아내는 철야 기도까지 하며 차츰 건강을 되찾았다.
마침 두 배의 급여를 주는 회사로 옮기고 아내를 살려 주신 하나님이 너무 감사해 모든 시간과 물질을 교회에 쏟았다. 그런데 지나치게 교회에 헌신한다는 아내와 자주 다투었고, 회사는 늘어나는 부채로 힘들어졌다. 새벽마다 하나님께 부르짖고, 유명한 기도원을 찾고, 금식기도도 했지만 마음의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우연히 한마음교회의 간증 영상을 보는데 절망적 상황의 간증자들이 세상을 다 가진 듯 기뻐하는 모습에 너무 놀랐다. ‘아니, 하나님을 믿을 수 있는 증거가 있다고?’ 엄청난 충격 속에 겨울 수련회에 참석했다.
첫날 예배에서 ‘증거’라는 말이 크게 들렸지만 왜 부활이 증거인지 이해할 수 없었다. 예배 후 어느 분이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실 때 도망갔던 제자들이 예수님의 부활을 목격하고 생명을 걸며 부활을 전했던 이야기를 해주면서 부활이 성경과 예수님의 말씀을 믿을 수 있는 결정적 증거가 된다고 했다. ‘증거가 정말 있구나!’ 순간 그 부활이 내게도 실제가 되는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곧이어 성령께서 사도행전 2장의 ‘너희가 죽인 예수’라는 말씀으로 예수님을 주인으로 믿지 않고 내가 주인 되어 내 의를 쌓은 교만하고 악랄한 죄를 보여주셨다. 회개할 수밖에 없었다. ‘하나님, 용서해 주옵소서. 예수님을 믿지 않았던 죄를 이제야 회개합니다. 그 동안 하나님의 마음을 몰라 나의 의를 내세웠던 것을 용서해 주옵소서. 예수님은 나의 주인이십니다.’
예수님을 만난 기쁨에 집에 도착하자마자 아내를 앉혀놓고 부활을 전했더니 아내는 너무 은혜가 된다며 놀라워했다. 습관적으로 짓던 죄가 자연히 끊어지며 가족 간의 관계도 회복되기 시작했다. 이제 인생을 정리할 나이지만 주님께 모든 염려를 맡기고 기쁘게 살아가는 시간이 날마다 새롭고 행복하다. 하나님께서 허락하시는 나머지 시간, 오직 주님께서 주신 사명, 생명을 살리는 부활의 증인으로 하나님의 잃어버린 자녀를 찾는데 바치리라 다짐한다. 부활의 복음으로 제2의 인생을 살게 해주신 하나님께 감사와 영광을 드린다.
김융 성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