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는 거의 매일 술에 취해 어머니를 구박하셨다. 두 분의 다툼으로 ‘어머니가 어디론가 떠나지 않을까? 나도 어머니처럼 불행하게 되지 않을까?’ 하는 불안함과 두려움 속에 살았다. 고등학교 진학을 위해 집을 떠나 혼자 지내게 되니 외로움이 찾아왔다. 섬이나 시골벽지 근무조건으로 장학금과 용돈이 보장된 간호대학을 졸업하고 벽지 보건진료소로 발령이 났다. 낯선 시골, 마음을 털어 놓을 수 없는 어르신만 가끔 만나는 진료소는 창살 없는 감옥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캄캄한 새벽녘에 누군가 관사 현관을 깨고 내 방으로 걸어오는 발자국 소리가 들렸다. 떨리는 손으로 겨우 수화기를 들고 “이장님! 진료소에 사람이… 네! 지금 오신다고요?” 큰 소리로 말하자 후다닥 도망을 갔다.
그 일 후 나는 매일 두려움에 떨며 지내다가 서둘러 결혼했다. 그런데 남편은 마시지 않던 술을 마셨고, 중학교 때 시작된 아들의 방황은 고등학교까지 계속됐다. 아들에 대한 염려, 친정과 시댁의 연속되는 힘든 일에 또 다시 나는 지쳐갔다. 하나님께 울부짖으며 기도했지만 상황은 변함없고 마음은 점점 힘들었다. 어느 날 새벽기도에 다녀오다가 ‘내가 믿는다고 하는 하나님이 정말 살아 계신가? 없는 하나님을 만들어 놓고 신념으로 믿는 것은 아닐까?’ 하는 고민을 하는데, 퍼뜩 대학 때 함께 교회에 다녔던 언니가 생각났다. 예수님을 믿고 우울증이 치료돼 기쁘게 사는 언니를 따라 춘천 한마음교회에 갔다.
목사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신 전능자가 이 땅에 오셨다 가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모든 사람에게 믿을 만한 증거를 주셨는데 그게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입니다’고 선포하셨다. 그 말씀을 듣는 순간 느낌과 감정, 보이는 상황과 사람에 따라 달라졌던 내 믿음은 뿌리째 흔들렸다. 그런 믿음으로 살았던 내게 성경의 예언대로 다 이루신 부활의 표적을 통해 예수님을 믿을 수 있다는 말씀은 너무나 새롭게 가슴에 닿았다. 십자가 아래서 도망갔던 제자들이 성경대로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신 후에야 성경과 예수의 하신 말씀을 믿었고, 그들이 어떤 핍박에도 굴하지 않고, 부활을 선포하다가 순교한 모습이 선명히 보이며 베드로, 도마, 하물며 예수 믿는 자를 핍박한 사울이 보았던 부활의 감격이 그대로 내게 부어졌다. 그리고 예수님을 채찍질하고 십자가에 못 박은 내 악한 죄를 알게 되니 통곡이 나왔다.
늘 혼자의 두려움에 살던 내게 주님께서 ‘내가 너와 함께한다고 하지 않았냐?’ 하시는데 마음이 무너져 내렸다. 그 크신 주님의 사랑 앞에 회개의 눈물을 흘리며 예수님을 나의 주인으로 영접했다. 빛이 비치면 어둠이 물러가듯 나를 누르고 어둡게 했던 모든 생각들이 한 순간에 사라지며 힘들던 진료소 생활도 너무 감사하고 즐거웠다. 그날부터 어르신들의 살아온 이야기와 고민에 마음을 같이 하며 부활하신 예수님을 믿는 것이 이 땅에서 기쁘게 살 수 있는 길이라고, 주님이 영원한 생명을 주신다고 복음을 전했다. ‘내가 죽기 전에 천국과 지옥을 어떻게 아는가? 가 봐야지 알지!’ 하시는 분도 있지만 언젠가 성령께서 반드시 역사하시리라 믿는다.
한 순간도 나를 떠난 적이 없으신 하나님, 그리고 물과 불처럼 하나될 수 없을 것 같았던 공동체와 나를 한 운명공동체로 연결시키고 하나되게 하신 분이 하나님이셨다. 아직도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진 가족들과 이웃들이 많이 있지만 모두가 부활의 복음으로 자유함을 찾는 그날까지 내가 있는 자리에서 사랑으로 섬기며 복음을 전하고 살아갈 것이다.
허숙 성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