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의 주를 만난 사람들] 사람과의 관계 어려워하다 기도와 사랑 전하며 회복

입력 2021-02-15 03:09

부모님이나 친척들이 모두 ‘사’자가 붙은 직업이었기 때문에 의사, 변호사가 대단한 직업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내 주변 친구들도 다 비슷한 환경이어서 ‘회사원’이라는 직업군이 있다는 것을 책을 보고 알았다. 그런데 각자의 삶이 우선이었고 칭찬보다는 질책이 많은 집안 분위기에서 하루하루가 너무 힘이 들었다. 나는 융통성이나 요령도 없었고 무엇이든 혼자서 해결하는 것이 습관이 되다보니 부모님과의 관계도 점점 멀어졌다. 공부는 잘했지만 쉽게 마음을 열지 못하니 친구들과의 관계도 무척 어려웠다.

내게 유일한 위로는 책이었다.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 책과 현실과의 괴리가 보이기 시작했다. 책과는 달리 착한 사람들이 손해를 보기도 하고, 자신의 이익을 위해 나쁜 일도 아무렇지 않게 하는 현실을 보며 크게 실망했다. ‘어디에도 살만한 세상은 없고 외로운데 도대체 난 왜 사는 걸까.’ 끊임없는 고민 속에 학창시절을 보냈다. 그래도 다른 사람을 위하는 삶을 살고 싶어 교육심리학을 전공해 자격증을 취득하고 심리사로 일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어떤 프로그램으로도 해결되지 않는 아이들을 보며 ‘근본적 답을 모르는 내가 과연 이 일을 계속 해야 하나’ 하는 고민이 됐다.

그러다가 오래 사귀던 남자 친구와 갑자기 헤어졌다. 너무 큰 충격과 배신감에 술을 마시고 다른 사람을 만났지만 모든 삶이 힘겹기만 했다. 죽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지옥에 대한 두려움에 그럴 수도 없었다. 그렇게 삶을 포기하고 있을 때 지인의 권유로 한마음교회에 따라갔다. 예배 말씀은 잘 이해할 수 없었지만 마음껏 울어도 쳐다보는 사람 하나 없는 기도 시간이 참 좋았다.

그러던 어느 예배 때 ‘예수님을 믿지 않는 것이 죄’라는 말씀이 가슴에 쿵 떨어졌다. ‘이게 뭐야? 이 세상에 끔찍한 범죄들이 수없이 많은데 왜 예수님을 믿지 않는 것이 지옥 갈 죄지?’ 이 질문과 함께 나와 아무 상관없던 예수라는 존재가 마음에 들어오며 말씀이 들리기 시작했다. ‘위인전이나 교과서에도 실존했던 사람인데 왜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지?’ 아무리 생각해봐도 그 이유는 부활밖에 없었다. 요한복음 2장 22절의 말씀이 딱 보였다. 제자들조차 부활을 본 후에야 성경과 예수님의 하신 말씀을 믿었다는 것이 너무 큰 충격이었다.

부활은 예수님이 누구신지 증명하는 사건이었고, 예수님은 살아계시는 나의 주인이셨다. 사람과의 관계가 어렵고 마음이 외롭고 힘들었던 것도 예수님을 믿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것을 알게 되자 하나님 앞에 엎드렸다. ‘하나님! 예수님을 믿지 않았던 죄를 회개합니다. 이제 당신 한 분이면 됩니다. 예수님이 저의 주인 되어 주세요!’ 부활로 하나님이 살아계심이 선명해지자 하나님은 부모님을 판단 정죄했던 것을 회개하게 하셨다. 나 자신이 하나님께 용서받을 만해서가 아니라 오직 사랑으로 용서받은 것인데 이런데도 회개하지 않는다면, 용서하지 않는다면, 판단 정죄한다면, 나는 예수님과 함께하는 사람이 결코 아니었다. 정치적 사회적으로 나도 모르게 많은 사람들을 판단 정죄했었는데 내가 결코 이들보다 나은 사람도 아니었고 판단 정죄할 만한 자격이 있는 사람도 아니었다. 철저히 회개하고 영혼에 대한 사랑으로 기도하고 전하는 것만이 나의 할 일이었다. 언제나 내 마음 가운데 함께 살고 계시는 예수님만 생각하면 하루하루가 너무나 감사하고 기쁠 뿐이다. 측량할 수 없는 이 사랑을 품고 사명자의 길을 갈 것이다.

박구연 성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