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은경 전 환경부 장관 구속으로 이른바 ‘블랙리스트’ 사태가 문재인정부에서도 되풀이됐다. 여권은 관례였다며 검찰 수사에 불만을 표하고 있지만 박근혜정부 당시 문화계 블랙리스트를 공격했던 입장에서 전형적인 ‘내로남불’이란 비판이 나온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이후 생겨난 직권남용죄 ‘뉴노멀’의 덫에 문재인정부가 빠졌다는 지적도 있다.
민주당 핵심 관계자는 10일 “이명박정부가 들어선 후 각 부처 차관 등이 부처의 공공기관장을 찾아와 읍소하고, 협박해서 일제히 옷을 벗고 나왔었다”며 “일종의 관례였는데 검찰이 ‘환경부 블랙리스트’ 수사를 시작했고, 법원마저 김 전 장관을 구속하니 안타깝다”고 말했다. 이낙연 민주당 대표도 이날 “법원의 판단은 존중해야 하지만 안타깝다”고 짧게 입장을 밝혔다.
이명박정부가 일괄 사표 등을 통해 참여정부에서 임명됐던 공공기관장을 교체했던 건 사실이다. 2008년 강만수 기획재정부 장관은 국회 공기업 대책 특위에서 “정치적 재신임 차원에서 그렇게(일괄사표) 했다”며 “법률적 판단보다는 정치적 판단으로 했다”고 인정했다.
문제는 이랬던 ‘관례’가 박근혜정부 문화계 블랙리스트 사태 이후 처벌받기 시작했다는 데 있다. 김기춘 전 대통령 비서실장과 조윤선 전 청와대 정무수석은 문화계 블랙리스트 건으로 1·2심에서 모두 유죄를 선고받았다. 다만 대법원이 직권남용죄에 대한 엄격한 심리 필요성을 지적하며 돌려보내면서 지난달 파기환송심이 개시된 상태다.
논란이 타 분야 공공기관장 인사로까지 확대될 가능성도 제기된다. 지난해 10월 국민의힘은 공공기관·정부 산하 기관장 2727명을 전수조사한 결과 캠프출신 인사 72명, 친여단체 출신 인사 83명, 정권 인사 311명 등 ‘낙하산 인사’가 466명(17.1%)으로 나타났다고 밝힌 바 있다. 이에 대해 여권 관계자는 “검찰이 환경부 사건 수사를 시작한 이후 청와대 인사권 선진화 작업을 벌였다”며 “공공기관장을 비롯한 공직인사권 상당 부분을 부처 장관에게 넘겨줘 각 부처 차원에서 담당하도록 제도를 바꿨다”고 말했다.
청와대는 ‘환경부 블랙리스트’ 표현에 강한 반감을 드러냈다. 강민석 청와대 대변인은 “블랙리스트는 특정 사안에 불이익을 주기 위해 작성한 지원 배제 명단”이라며 “재판부의 설명배제 명단 어디에도 ‘블랙리스트’ 단어가 없고 감시·사찰 등의 행위도 없었다. 문재인정부에 ‘블랙리스트’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반박했다. 또 “이전 정부에서 임명한 공공기관 임원(공공기관장 330여명, 상임감사 90여명) 대부분이 임기를 마치거나 적법한 사유와 절차로 퇴직했다”며 “블랙리스트가 존재했다면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최형두 국민의힘 원내대변인은 “청와대 주장대로라면 역대 어느 정부에서도 블랙리스트는 없었다. 블랙이란 원래 드러나지 않기 때문”이라고 비판했다. 원희룡 제주지사도 “독재정권이 스스로를 독재라고 부르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했다.
강준구 기자 eye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