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피해 소상공인 280만명에게 최대 300만원의 버팀목자금이 최근 지급됐다. 4조원 정도가 풀렸는데 어디에 쓰였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다. 다만 상인들 얘기를 들어보면 돈이 어디로 흘러갔는지 대충 짐작이 간다. 밀린 임차료를 내고, 빌린 돈을 갚는 게 먼저였다고 한다.
지난해 지급된 재난지원금은 22조원 정도. 올해는 더 많은 액수가 지원될 것으로 보인다. 코로나19 대응 추가경정예산도 지난해 4차례나 편성됐는데, 이 규모도 66조원이 넘는다. 주머니에 돈을 직접 꽂아주는 재난지원금이나 경기 부양용 추경 모두 정부 지자체 등 공공부문 재정에서 충당된다. 상당 부분이 채권을 발행하고 중앙은행이 이를 사들이는, 즉 돈을 찍어내는 방식으로 마련된다.
그런데 돈이 풀려도 실물경제는 살아나지 않고 있다. 정확히 말하면 역부족이다. 가게를 정리할지 고민하는 자영업자들에게도, 일거리가 없어 채용을 중단한 기업들에도 지원금이나 지원책 모두 충분치 않다. 그나마 지원받은 돈은 건물주나 은행·기업으로 흘러들어갔고, 그 자체로 또는 대출 과정을 거쳐 종잣돈이 돼 자산시장에 투입됐다. 일자리를 늘리는 투자와는 거리가 먼 부동산이나 주식 시장에 몰려간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저금리로 늘어난 유동성이 자산시장으로만 흘러가 거품을 키우고 있는 상황에서 정부발 뭉칫돈은 자산가격 급등의 불쏘시개가 됐다. 포모증후군(자신만 기회를 놓칠 것 같은 불안감)에 사로잡힌 2030세대까지 뛰어들면서 자산시장은 이제 손대기 어려울 정도로 뜨거워졌다. 그 사이 실물경제는 계속 주저앉고 있다.
자산가격 상승은 ‘부(富)의 효과’를 가져와 소비를 진작시킬 가능성을 높이는 긍정적 효과도 있다. 자산을 활용해 재산을 늘리는 것도 이제 노동 영역으로 보는 게 ‘뉴노멀’이라는 주장도 있다. 하지만 실물경제와 자산시장의 괴리는 부작용을 낳는다는 의견이 여전히 많다. 소득 증가속도가 자산가격 상승속도를 따라가지 못하면 근로 의욕이 저하되고, 집값 급등으로 주거 목적 소유자의 세금 부담이 가중되면 실질소득 감소 효과가 나타난다는 것이다. 자산가격 급등으로 빈부 격차가 확대되면 사회 불안도 커질 수밖에 없다. 한국은행이 과도한 자산가격 상승에 대해 경고한 것도 이 같은 우려 때문이다.
가장 걱정스러운 상황은 자산가격의 급락, 즉 거품이 한꺼번에 터지는 경우다. 벌써 비관론자들은 양적 완화에 따른 자산가격 급등이 가져온 빈부 격차 수준이 상위 0.1%가 25%의 부를 소유했던 대공황 수준에 가까워졌다는 분석도 내놓는다.
물론 금융 당국이나 중앙은행의 조정 능력이 금융대란에 이르게 방치하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은 있다. 미국 연방준비제도가 제로금리를 2023년까지 유지할 것임을 시사해 자산 거품 붕괴에 대한 우려도 일정 부분 불식됐다. 하지만 원자재값 상승으로 인플레이션이 발생하면 말을 바꿀 수도 있다. 예상치 못한 중국발 변수로 금융시장이 출렁인 경험도 많다.
자산시장이라는 호수는 수년간 일정 규모를 유지해 왔다. 그런데 정부가 푼 돈이라는 새로운 물줄기가 흘러들어와 호수는 과거보다 커져 버렸다. 물이 증발하고, 비가 돼 다시 호수로 흘러들어가는 환류시스템이 고장날 정도로 호수 규모 확대 속도가 빨라지고 있다.
소비 여력은 없어지는데 자산가치만 오르면 경제의 선순환 구조가 깨진다. 이는 정부뿐만 아니라 정치권 특히 서울시장·대권 후보들도 우선적으로 고민해야 할 문제다. 팬데믹 위기에 금융 위기까지 더해지면 그 충격은 상상을 초월할 수 있기 때문이다. 거품은 언젠가 터진다. 특히 거품은 터지기 직전이 가장 화려하다는 얘기도 있다.
한장희 산업부장 jhha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