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온의 소리] 야훼의 밤

입력 2021-02-11 03:02

새해가 밝은 지 한 달이 넘었지만, 우리에겐 음력 설 명절이 남아있다. 물리적 시간인 1월 1일이 한참 지났어도 음력 1월 1일이 지나야 우리의 새해 이벤트는 마무리된다. 석기시대부터 태음력을 사용했다고 하니 음력의 세월은 실로 오래됐다.

태양의 움직임은 낮과 밤, 여름과 겨울의 변화를 통해 하루라는 너무 짧은 기간과 1년이라는 너무 긴 기간만을 알려준다. 반면에 모양의 변화를 확연히 볼 수 있는 달은 삶의 시간을 결정하는 데 매우 유효하다. 태음력이 문명 이전부터 사용된 이유다.

태양력은 기원전 6000년쯤 고대 이집트에서 기원한 것으로 추정된다. 당시 나일강은 정기적으로 범람했다. 나일강 유역에 사는 이집트인들은 홍수를 기점으로 1년을 산출했다. 홍수를 관장하는 신이 자신들의 시간과 삶을 주관한다고 믿으면서 시간과 신화가 연결됐다.

태양력의 역사는 로마제국과 중세 시대의 혼란을 거쳐 오늘날에 이르렀다. 혼란스러움은 시간을 주관하고 사람들의 일상을 통제하려는 탐욕과 무관하지 않다. 역사의 시간을 움켜쥐려는 다양한 노력으로 인해 신화가 덧붙여진 시간에 권력이 끼어들었다. 그 흔적이 서양의 열두 달 이름에 남아있다. 달과 태양의 움직임은 이렇듯 우리의 시간과 삶을 규제하며 절기를 통한 삶의 다양한 양식에 영향을 줬다.

시간에 대해 전혀 새로운 이야기를 하는 민족이 있다. 고대 이스라엘은 그들이 출애굽 한 날을 기점으로 한 해의 처음을 정했다. 아홉 가지 재앙에도 여전히 강퍅함을 보인 바로에게 내린 하나님의 마지막 재앙은 이집트의 모든 장자를 죽이는 것이었다. 바로의 장자부터 옥에 갇힌 사람의 장자까지, 가축의 처음 난 것들 모두를 야훼 하나님이 치는 밤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은혜를 입었다. 야훼는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가족대로 어린 양을 잡고 그 피를 문 인방과 좌우 설주에 뿌리고 아침까지 한 사람도 자기 집 문밖으로 나가지 말라고 했다.

이집트 백성의 곡소리가 넘쳐나는 밤, 이스라엘 백성은 안전했다. 이스라엘 백성의 첫 번째 유월절이었다. 이스라엘의 출애굽이 시작됐다. 야훼의 군대가 그들을 이끌었다. 그 밤은 ‘야훼의 밤’이었다. 야훼의 밤은 야훼가 밤새 깨어서 이스라엘을 구원하는 야훼의 시간이었다. 그렇게 야훼의 밤을 보내고, 야훼는 그달을 한 해의 첫 달로 명했다. 아빕월 14일이었다. 그날은 초승달이 떴고 초승달이 뜬 지 14번째 밤, 즉 보름달이 떴을 때 이집트 탈출이 시작됐다.

그러나 초승달이나 보름달은 더이상 중요하지 않았다. 이스라엘은 이제 달의 움직임이 아니라 하나님의 움직임에 따라 새로운 시간을 경험했다. 그 후 오랜 역사의 굴곡 속에서 이스라엘의 시간도 태양력과 태음력 사이를 오가며 쌓여갔지만, 그들은 야훼의 밤을 잊지 않았다. 언제나 그 밤을 기억하며 새해 첫 시간을 출발시켰다.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의 구원과 더불어 새로운 해를 시작하면서, 그 구원에 합당한 새로운 시간을 다짐했으리라.

태양력과 태음력 사이에서, 2월 12일에도 여전히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라는 인사가 유효하다. 이미 출발한 2021년을 생각하면 새해 인사의 유통기한은 꽤 길다. ‘새해’라 불리는 이 기간에 우리는 무엇을 기억하며 무엇을 다짐했는가. 태양이나 달의 시간보다 더 중요한 것은 야훼의 시간이다. 야훼의 시간 속에서 신화의 신들이나 세속적 권력은 빛을 잃는다. 그러니 이제 우리가 경험한 야훼의 밤이 우리의 새로운 시작이 돼 야훼의 군대가 이끄는 구원의 길로 나아갔으면 좋겠다.

김호경 교수 (서울장로회신학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