뛰는 물가·코로나가 바꾼 설 상차림… “여보, 간편식으로 할게요”

입력 2021-02-10 04:05

같은 ‘비대면 명절’이지만 이번 설은 작년 추석과는 또 다른 모습이 나타나고 있다. 연초부터 이어지고 있는 물가 인상 영향에 5인 이상 사적 모임 금지 조치까지 겹치면서 ‘우리 가족 먹을 만큼만 간소하게 준비해서 명절 분위기만 내자’는 인식이 지난 추석보다도 더 강해졌다.

직장인 이모(51·여)씨는 9일 이번 설에 처음으로 가정간편식(HMR) 제품으로 명절 음식을 준비할 계획을 세웠다. 이씨는 “장을 보러 가도 식재료값이 너무 올라서 선뜻 집어 들기가 어려워졌다”며 “이번 설은 5인 이상 모일 수 없으니 평소처럼 대량으로 음식을 만들 필요도 없어서 가족들 먹을 만큼만 HMR 제품으로 만들 생각”이라고 말했다.

설 연휴를 이틀 앞둔 이날까지도 신선식품 물가의 고공행진은 이어졌다.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에 따르면 9일 기준 양파(1㎏) 3336원, 시금치(1㎏) 7722원, 사과(10개) 3만6294원, 배(10개) 4만7918원, 소고기 양지(100g·1등급) 6259원, 계란(30개) 7476원 등 대부분이 평년 대비 높은 가격을 형성하고 있었다. aT가 발표한 지난 4일 기준 설 차례상 구매 비용(전통 차례상 기준 28개 품목)도 전통시장 26만7392원, 대형마트 37만4370원으로 전년보다 모두 15% 이상 올랐다.

유통업계에서는 명절 음식 간편식과 완제품을 판매하는 상차림 세트의 수요가 증가했다. 이런 트렌드는 몇 년 전부터 강해지고 있었지만 올해 그런 경향이 더 짙어졌다는 게 업계 공통의 얘기다. 이마트 자사 브랜드 피코크의 간편 명절 음식 매출은 지난달 29일부터 이달 7일까지 지난해 설을 앞둔 같은 기간보다 21.1% 늘었다. 홈플러스에서는 지난 1~7일 명절 음식 간편식 판매량이 전년 동기 대비 40% 신장했다.


SSG닷컴에서도 지난달 24일부터 이달 6일까지 전년 동기(1월 6~19일) 대비 명절 음식 HMR(사진) 매출이 70% 늘었다. 동그랑땡·떡갈비가 355%, 모듬전이 120% 증가하는 등 같은 기간 관련 신선식품 매출이 50% 늘어난 것과 비교하면 훨씬 높은 증가세다. 마켓컬리에서는 지난 1~7일 명절 상차림 세트 판매량이 지난해 추석 대비 36% 뛰었다. 마켓컬리 관계자는 “설 당일에 상품을 받겠다는 예약이 50%로 작년 추석(39%)보다 크게 늘었다”며 “5인 이상 모일 수 없다 보니 당일에 간단히 상을 차려 명절 분위기만 내자는 움직임이 강해진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동원홈푸드가 운영하는 더반찬&에서 판매한 ‘프리미엄 차례상(위 사진)’도 작년 설 대비 판매량이 50% 늘었다. 각종 차례 음식과 국내산 과일들로 차례상을 구성해 25만원에 판매한 상품이다. 동원홈푸드 관계자는 “차례상 매출이 눈에 띄게 증가했다”며 “친지들이 모이지 않으니 큰집에서 차례상만 주문해 간단하게 차례를 지내자는 인식이 반영된 것 같다”고 말했다. 여기에 최근 물가 상승으로 차례상 준비 비용에 부담이 커진 것도 영향을 미쳤을 것이란 분석이다.

정진영 기자 you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