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는 포장마차에서 술을 마시던 나를 발견하지 못하고 힘없이 걸어갔다. 그날 밤 잠을 이루지 못했다. 힘없이 걷던 아내의 모습이 자꾸 아른거렸다. 이렇게 만든 내가 죄스러웠다.
몇 년 후 알게 된 사실인데 아내는 벌이가 없는 상황에서 가족에게 밥 한 끼라도 먹이려 친구와 지인들에게 돈을 꾸러 다녔다고 한다. 그날은 돈을 빌리지 못해 ‘끼니를 어찌해야 하나’ 하는 막막함으로 돌아오는 길이었다고 했다.
직장 동료 환경 세상을 탓하던 내가 처음으로 ‘술만 마시는 내가 문제야. 모든 게 내 탓이야’라고 생각하며 울었다. 처음으로 가장이자 아버지로서 책임감과 죄책감을 느꼈다.
한참을 울다 정신을 차리고 회사 수십 곳에 이력서를 제출했다. 간절한 마음으로 기다렸지만, 연락을 주는 곳이 없었다. 집에 쌀도 없는데 시간만 하염없이 지나갔다. 제대로 된 남편과 가장이 되고 싶은 마음은 간절했건만, 막다른 골목에 내몰린 느낌이었다. 먹고살기 위해 도둑질이라도 해야 하나 싶을 정도로 어려웠다.
절망이 깊어가는 가운데 서울 성수동의 한 회사에서 이력서를 낸 지 한 달 만에 연락이 왔다. “이종락씨, 아직 취직 안 했으면 우리 회사에서 영업직으로 일합시다.”
그 소식에 너무 기쁘고 행복해 동네 한 바퀴를 뛰었다. 실직 기간이 더 길어졌으면 가족을 위해 무슨 일을 저질렀을지 모른다. 가장으로서 아내와 딸을 위한 절실함이 생겼다. 더는 가족을 실망시키고 싶지 않았다.
입사한 회사는 믿음이 신실한 사장이 운영했다. 매주 월요일 목회자를 초청해 예배를 드렸다. 한 목회자가 성 어거스틴의 참회록을 주제로 말씀을 전했다. 그는 술을 마시며 음탕한 생활을 하던 어거스틴이 회개해 성화되는 과정을 소개했다.
어거스틴의 타락했던 삶이 어찌나 내 삶과 같은지…. 모든 말씀이 집중포화하듯 내 심장을 때렸다. 눈물이 났다. 함께 예배를 드리던 직원들이 이상하게 쳐다봤다. 창피해서 눈물을 닦고 또 닦아도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회개의 눈물을 흘렸다. 그러다 목놓아 울었다.
이날 말씀이 내 마음에 깊이 새겨졌다. 새로운 마음으로 회사 생활을 해야겠다고 다짐했다. 하지만 교회에 다녀야겠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다만 전 직장에서 내가 어떤 사고를 쳤는지 회사 사람들도 소문을 듣고 알고 있었기에 어떻게든 말씀을 실천하고 싶었다. 친구와 술을 멀리하고 남들보다 두세 배 열심히 일하기 시작했다.
다행히 사장으로부터 조금씩 신임을 받기 시작했다. 회사의 모든 열쇠와 창고 관리까지 맡길 정도로 인정받았다. 나에 대한 사장의 신임이 높아질수록 내부에서는 나에 대한 불만이 쌓여갔다. 동료들의 시기심과 질투가 고조될 즈음 사건이 터졌다.
정리=김아영 기자 singforyou@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