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림픽 겨누는 소년 신궁… “활 스트레스, 활로 풀어요”

입력 2021-02-10 04:03
김제덕이 8일 충북 진천의 국가대표선수촌 양궁장에서 열린 대표팀 훈련에서 표적을 응시하며 활 시위를 겨누고 있다. 대한양궁협회 제공

호흡을 가다듬고 오른손으로 활시위를 당긴다. 왼쪽 눈꺼풀이 살짝 가늘게 닫히며 앞을 가늠하는가 싶더니, 이내 활을 떠난 살이 날카로운 소리와 함께 표적지를 꿰뚫는다. 2004년생 양궁선수 김제덕(16)은 표적지 한가운데를 맞출 때의 그 쾌감에 활을 잡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그는 지난해 국가대표 1·2차 선발전에서 선배들을 제치고 모두 1위를 차지했다. 4월 있을 3차 선발전에 이어 두 차례 평가전까지 통과한다면 선수로서 최고 영예인 올림픽 무대에 나선다. 세계 최강 한국 양궁 역사에서도 최연소다.

올해 고등학교 2학년이 되는 김재덕은 지난해 12월부터 진천 국가대표선수촌에서 남자 양궁 2차 선발전을 통과한 20명 중 다른 7명과 함께 생애 첫 합숙 생활을 하고 있다. 집을 이만큼 오래 떠나 훈련하는 건 활을 잡은 이래 처음이다. 집 생각이 날 법도 하지만 머릿속에는 양궁밖에 없어보였다. “고등부에서 하던 훈련이랑 차이가 많아요. 집중력도 훨씬 낫고 분위기도 치열해서 좋아요.” 국민일보는 7일 선수촌에서 훈련에 매진 중인 그와 통화했다.

소년 활잡이의 시련, 그리고 부활

김제덕이 양궁을 시작한 건 2013년, 그러니까 초등학교 3학년이었다. 양궁부 명문이자 모교인 경북 예천초등학교에서 친구의 장난섞인 권유로 우연히 활을 잡았다. 이듬해부터 대회에 나간 그는 초등학교 5학년이던 2015년부터 순위권에 들더니 2016년 전국소년체육대회에서 금메달 3개, 은메달 1개를 휩쓸며 본격적으로 유명세를 탔다. 김제덕은 “큰 대회에서 금메달을 따고 나니 재능이 있다는 생각이 처음 들었다. 자신감이 붙었다”고 말했다.

승승장구하던 김제덕이지만 도쿄올림픽은 아픈 기억이 될 뻔했다. 중학교 3학년이던 2019년 그는 국가대표 2차 선발전에 나섰다. 매년 국가대표를 새로 뽑는 양궁은 1차 선발전에서 남녀 각각 64명을 선발하고 2차에서 그중 각각 20명을 재차 가린다. 이후 3차에서 8명씩을 뽑은 뒤 내부 평가전을 거쳐 이중 올림픽에 갈 3명을 뽑아낸다. 1차에서 14위를 한 김제덕은 2차에서 최소 20위 안에 드는 걸 목표로 하고 있었다. 그러나 갑작스런 어깨 부상으로 대회를 중도 포기했다.

부상명은 어깨충돌증후군이었다. 지나친 반복 훈련 탓에 어깨 관절끼리 부딪혀 염증이 생겼다는 설명이었다. 하필이면 가장 중요한 순간 닥쳐온 시련이었다. 김제덕은 “진작 관리했으면 아프지 않고 시합을 할 수 있었을텐데 하고 후회를 많이 했다”면서 “기권 뒤 2개월 정도 쉬면서 재활했다”고 말했다. 활을 완전히 놓지 않는 이상 완쾌가 어려운 부상이라 김제덕은 앞으로도 꾸준히 관리를 받아야 한다.

코로나19로 올림픽이 예기치 않게 미뤄진 것은 김제덕에게 새로운 기회였다. 그는 “이미 대표팀에 뽑혔던 선수들은 아쉬움이 크겠지만 개인적으로는 새로 대표 선발전을 치를 수 있어 다행이었다”고 말했다. 물론 4월 3차 선발전과 평가전을 거쳐야 올림픽 출전이 확정되지만 1·2차전 모두 1위를 차지한 이 기세를 유지한다면 도쿄에서 활시위를 당기는 그의 모습을 보는 것도 충분히 가능하다.

활잡이에게는 다 계획이 있다

올림픽에 나가지 못한다 해도 그는 계획을 다 세워놓았다. 김제덕은 “올림픽 대표가 된다면 국제대회를 중심으로 훈련하고 안 된다면 국내 고교생 대회에 맞는 루틴을 하려 한다”고 말했다. 누가 만들어 준 게 아니라 스스로 세운 목표와 일정일만큼 그는 계획적이고 꼼꼼한 성격이다. 김제덕은 “부상을 입을 당시에도 예상 못한 변수 때문에 스스로 세운 계획이 무너져 더 상심이 컸던 것 같다”고 말했다.

선수촌에 들어오기 직전인 지난해 12월 초 그는 요양병원에 입원해 계신 할머니를 찾았다. 코로나19 예방 탓에 직접 얼굴과 손을 맞대지 못한 채 비대면 면회를 해야했다. 그는 “할머니에게 대표 선발전 결과를 말씀드렸더니 더 열심히 하라고 해주셨다”고 말했다. 무뚝뚝한 아버지는 합숙 잘하라는 말 외에 별다른 이야기는 하지 않았지만 처음 집을 떠나있는 아들에게 전화를 자주 걸어 용기를 북돋아주고 있다.

김제덕도 아버지처럼 과묵한 성격이지만 활을 잡지 않을 때는 또래처럼 운동장에서 축구도 하고 메이플스토리, 서든어택 같은 컴퓨터 게임 역시 즐긴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총을 쏘는 게임을 양궁만큼 잘하지는 못한다. 다만 양궁을 하며 받은 스트레스는 게임이 아닌 양궁으로 푼다. 그는 “스트레스를 게임으로 풀려고 하지는 않는다. 활로 쌓인 스트레스는 다시 활로 풀어야 한다”면서 “훈련이 잘 되면 그때부터 스트레스가 풀리기 시작한다”고 말했다.

김제덕은 함께 선수촌에 들어온 선배들과 하루 화살 400~500개를 날리며 훈련에 매진하고 있다. 올림픽 출전선수 3인에 든다면 생일을 선수촌에서 보내야 하지만 그의 목표는 흔들림이 없다. 그는 “선수 생활을 하면서 올림픽이나 아시안게임 등 각종 세계대회 금메달을 모두 하나씩 따는 게 꿈”이라면서 “양궁이라는 종목에서 사람들 기억에 이름 세 글자를 남길만한 선수가 되고 싶다”고 말했다.

조효석 기자 promen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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