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시각] 옐런 美 재무장관의 편지

입력 2021-02-10 04:05

재닛 옐런은 지난달 26일 미국 최초의 여성 재무장관으로서 업무를 시작하면서 직원들 앞으로 취임사 격의 편지를 보냈다. 미 재무부 홈페이지에는 ‘옐런 장관이 직원들에게 보내는 첫날 메시지’라는 제목으로 이 편지가 게시돼 있다. 옐런은 편지에서 현재의 감염병 위기는 2008년 금융 위기와는 전혀 다르지만 규모 면에서는 그보다 작지 않다면서 위기로부터 경제를 구해온 재무부의 임무를 이제 완수하자고 직원들을 독려한다. 이어 재무부가 지금 해야 할 임무를 제시한다.

“우리는 미국인들이 머리 위에 지붕을 갖도록 하고 식탁 위에 음식을 올려놓을 수 있게 함으로써 그들이 이 팬데믹의 마지막 몇 달을 견디도록 도와야 합니다. 그런 다음, 우리는 그들이 일자리로 안전하게 돌아갈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합니다.”

‘경제를 구하자’고 할 때의 그 ‘경제’란 게 거대하고 추상적인 무엇이 아니라 위기에 빠진 사람들이라는 것을 명료하게 밝힌 것이다. 옐런은 앞서 열린 재무장관 인준 청문회에서도 “재무장관으로서 내게 두 가지 과제가 있다”며 “미국 국민이 팬데믹의 마지막 몇 달을 견디도록 돕는 것과 사람들이 안전하게 일자리로 돌아가게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청문회에서 지금은 국가 부채를 걱정할 때가 아니라며 과감한 경기부양책을 주장했다. 그는 “대규모 부양책으로 인한 혜택이 비용을 크게 초과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조 바이든 대통령이 요청한 1조9000억 달러의 초대형 경기부양안이 인플레이션을 부를 수 있다는 우려에 대해서도 “그런 위험이 있을 수 있고 현실화될 수도 있지만 국가는 이에 대처할 수단을 가지고 있다”고 반박하는 한편 “우리가 해결해야 할 경제적 도전과 엄청난 고통, 그것이 가장 큰 위험”이라고 강조했다.

옐런은 대학 교수를 하다가 정부에 들어와 1997년 여성으로서는 처음 백악관 경제자문위원회(CEA) 위원장이 됐고, 2013년 역시 여성 최초로 연방준비제도 의장에 올랐다. 그리고 올해 75세 나이로 미국 경제를 이끄는 첫 여성 수장이라는 기록을 썼다. 미 정부 내 경제 관련 3대 요직으로 꼽히는 CEA 위원장, 연준 의장, 재무장관을 모두 맡은 유일한 인물이기도 하다.

옐런은 첫날 편지에서 “내가 학계에서 정부로 자리를 옮긴 이유는 경제 정책이 사회를 개선하는 강력한 도구가 될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라며 직원들에게 “우리는 불평등, 인종차별, 기후변화를 해결하기 위해 경제 정책을 사용할 수 있고 또 사용해야 합니다”라고 촉구했다. 그의 편지는 자신이 왜 경제학자가 됐는지로 이어진다. “이유는 아버지였습니다. 아버지는 브루클린 노동계급의 의사였습니다. 아버지는 실직하거나 임금을 받지 못한 환자가 있으면 밤에 집에 돌아와서 우리들에게 그 얘기를 하곤 했습니다.”

옐런은 사람들의 경제적 고통에 본능적으로 반응하던 아버지의 에피소드를 전하며 “수십 년이 지난 지금도 나는 경제학이라는 나의 과학을 아버지가 바라보는 방식, 즉 사람들을 돕는 수단으로 바라보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라고 얘기했다. 그는 재무부 직원들도 경제 정책을 사람들의 삶을 개선하는 방법으로 바라보고 있고, 데이터 아래에 있는 인간을 보고 있다는 것을 안다고 했다. 그러면서 그런 관점이 국가를 더 강하고 더 번영하게 만들도록 했다는 결론을 후세의 경제학자들이 내릴 것으로 기대한다고 덧붙였다.

옐런의 편지는 코로나19로 수많은 사람이 삶의 벼랑 끝으로 내몰린 이 고통의 시대에 정부와 재정은 무엇을 해야 하는지, 경제학이나 경제 정책이 무엇을 잊지 말아야 하는지 생각해보게 한다.

김남중 국제부장 njkim@kmib.co.kr